미코노미 시대, 연봉보다 더 중요한 '라이프스타일'

입력 2024-05-28 17:18


회사와 직원은 고용 관계로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바로 고용 관계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이다. 과거에는 '충성심'이 고용 관계의 핵심이었다. 회사가 근무 환경을 제공하면, 직원은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리고 회사는 그 대가로 급여를 지급했다. 직원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조직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이렇게 조건을 제시하고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보상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사실이다. 일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내적 동기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심리학자 리차드 드샴은 '내적 인과성(Personal Causation)' 이론을 내세웠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의 원천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바른 동기부여를 위해서는 외부 힘이 아닌 내면의 욕구를 자극해야 한다고 말한다. 드샴에 따르면, 일을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면 내적 인과성이 훼손된다. 자발적으로 일하려는 마음이 외부의 통제에 의한 행동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열정은 사그라들고 일에 대한 흥미도 잃게 된다.

보상만으로 근원적 업무 동기를 만들지 못한다면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기업들은 몰입에 주목한다. 조직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려는 마음이다. 보람을 찾아 일하고 여기서 얻는 성취감을 중시한다. 고용관계는 충성심을 넘어, 몰입의 시대로 접어든다.

몰입에 기반한 고용관계는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지만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 남아있다. 기업들은 직원몰입을 높이기 위해 매년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문제는 노력 대비 성과가 그저 그렇다는 점이다. 갤럽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들의 직원몰입 수준은 20% 남짓이다. 몇 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는 수치다. 몰입도 점수를 두고, 전문가들은 알맹이 빠진 껍데기라 말한다. 몰입을 끌어내는 요인은 뒷전이고, 결과치를 산출하는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만 몰입을 바라보는 데서 기인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일자리를 선택할 때 사람들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까? 보상이 물론 중요하다. 그렇다고 반드시 높은 급여를 주는 기업을 선택하는 건 아니다. 보상을 중요한 요소에서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급여가 오르지 않더라도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회사를 택할 거라 말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근무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회사, 삶의 질에 관심을 갖는 회사, 자아실현을 도와주는 회사,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회사 등 개인의 가치관에 맞는 직장을 선호한다. 일을 생계유지 수단으로만 여기던 과거와 달라졌다. 일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경향이 짙어졌다.

최근, 젊은 세대를 관통하는 주요한 특징으로 ‘개인화’가 손꼽힌다. 성장기 때부터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세상에 살아온 세대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선호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향유한다. ‘나’와 ‘나의 취향’이 중심에 있다. 이러한 특징은 '미코노미(me + economy)'라는 특유의 경제적 행태를 보여준다. '미코노미'는 개인의 취향, 가치,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행태를 말한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적극적으로 지갑을 연다. 기존 대량생산, 대량소비 경제 트렌드와 달리, 개인 맞춤형 제품·서비스에 더 많은 가치를 둔다.

미코노미 현상은 고용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개인화 세대는 회사와 충성 서약이 아니라 고용 ‘계약’을 맺는다고 생각한다. 조직 중심의 천편일률적 고용관계에 거부감을 느낀다. 회사가 자신의 삶에 잘 들어맞는지 조목조목 따진다.

직장은 이제 단순히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은 직장을 삶의 일부로 바라본다. 조직 안에서 행복감을 느낄 때 자발적으로 몰입하겠다고 말한다. 긍정적 직원경험을 높여야 하는 까닭이다. 일하는 방식 역시 예외일 수 없다. 회사가 강제하는 시공간을 벗어나,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일하는 방식을 경험하길 원한다.

긍정적 직원경험을 주고 싶다면 '선택적 근무'만한 카드도 드물다. 일하는 방식에 구성원이 느끼는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재택근무를 선호하지만, 누군가는 사무실에서 집중적으로 빠르게 일을 마무리하길 원한다. 구성원은 한 덩어리의 집합명사일 수 없다. 무수히 많은 성향과 욕망이 존재한다. 이를 추적하고 조합하다 보면 감춰진 페르소나를 만나게 된다.

경력을 갓 시작한 신입 직원을 떠올려보자. 이들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빠른 조직 적응, 소속감, 네트워크 형성을 기대한다. 이는 곧 하나의 페르소나를 형성한다. 선호하는 근무환경 역시 형상화된다. 듀크(DEWK: Dual Employee With Kids)족은 어떨까? 미취학 자녀를 둔 30대 근로자다. 가족과의 시간을 보장해 주는 근무방식을 희망한다. 워킹맘 페르소나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최대 관심일 것이다. 효율적으로 일하고, 절약한 시간을 자녀를 돌보는데 쓰고 싶어 한다. 은퇴를 앞둔 고령 인력군은 인생 2막을 지원하는 근무환경에 관심이 많다. 획일적인 9 to 6 오피스 근무 방식으로는 다양한 페르소나 니즈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선택의 폭을 넓히는 접근이 필요하다. 페르소나에 따라 동기부여 요소와 고충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업무 인프라는 이전과 비교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해졌다. 반면 일하는 시공간에는 주목할 만한 발전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팬데믹 기간 비대면 근무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전까지 누구도 해독하지 못한 선택적 유연근무 방식에 이르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우리는 이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개개인 니즈에 맞춰 일에 집중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는 긍정적 직원경험을 높이는 길로 이어진다.

최근 미코노미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고용관계에서도 개인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맞춤형 근무 환경이 부각되고 있다. 다양한 페르소나를 파악하고 개인화된 근무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면서도 협업과 연결성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접근은 인재 확보와 인재 이탈 방지는 물론, 직원경험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김주수 MERCER Korea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