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실이 와르르…루이비통이 모셔 온 '스타'

입력 2024-05-27 19:15
수정 2024-05-28 00:20

전시장 천장에서 형형색색의 실뭉치가 와르르 쏟아진다. 마치 하늘에서 색깔 폭포가 쏟아지는 것 같기도, 바닥 위에서 실로 만든 무지개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선명한 색의 실뭉치를 서울 청담동 전시장 바닥에 내려뜨린 작품의 이름은 ‘착륙’. 섬유를 이용해 자수 기술로 예술을 하는 작가 실라 힉스(사진)가 10년 전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다.

1958년부터 실과 천 등을 사용해 작업을 펼쳐 온 힉스는 ‘섬유 아트의 선구자’로 꼽힌다. 섬유를 이용해 미니어처부터 대형 기념비와 설치물까지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순수 예술과 응용 예술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순히 작은 장식품을 제작하는 도구로 여겨지던 섬유와 천을 가지고 그는 건축물, 가구 등을 만드는 도전을 펼쳤다. 그렇게 힉스는 작업 인생 내내 전 세계 다양한 브랜드에 영감을 줬다.

패션계 슈퍼스타 힉스의 작품들이 지금, 서울 땅에 닿았다. 청담동 에스파스 루이비통에서 열리는 특별전 ‘착륙’에서다. 이번 전시에는 힉스를 대표하는 대형 설치작품 세 점이 나왔다. 협소한 공간에 전시되지만 국내에서는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작품들이다. 모두 루이비통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업물이다. 그의 독특한 섬유 가공 기술과 재료 활용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만 골라 서울에 가져온 것이다.

힉스는 자신의 작품이 한 곳에 고정되거나 특정한 형태로 굳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작가다. 중력을 받아 아래로 떨어지거나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작품이 많은 이유다. 그는 울 나일론 실크 리넨 또는 면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분위기를 전달한다. 관람객들의 개입도 환영한다.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은 그의 작품 사이를 걸어 다니고 심지어 눕거나 앉아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전시 공간도 100% 활용한다. 건축 양식에 따라 작품을 끼워 맞추는 스타일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설치작 ‘벽 속의 또 다른 틈’이 공간 활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섬유 뭉치를 벽 구조에 맞춰 기대어 쌓아 올린 작품으로 섬유의 푹신함을 그대로 살린 특성 때문에 관람객이 앉아 쉴 수 있는 소파처럼 보이기도 한다. 힉스는 이 작품을 통해 순수 예술과 ‘장식품’의 경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반대쪽 벽에는 천으로 만든 색깔 기둥 ‘토킹 스틱’이 자리했다. 마치 두꺼운 전시장 벽을 뚫고 유약한 천 기둥들이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인디언 이쿼로이 지방의 원주민들이 회의할 때 발언권처럼 쓰던 지팡이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이전 전시에서는 대부분 땅 위에 세운 채 전시했지만 루이비통재단은 전시 공간 내부 벽을 색다르게 활용하기 위해 토킹 스틱을 벽 위에 심었다.

이번 특별전은 루이비통 ‘미술관 벽 너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루이비통은 서울을 비롯해 일본 도쿄와 오사카, 독일 뮌헨, 이탈리아 베네치아, 중국 베이징에 전시 공간을 열고 세계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미국을 대표하는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과 서양화가 알렉스 카츠 등 다양한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했다. 전시는 오는 9월 8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