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경기 여주의 페럼클럽(파72) 17번홀(파4). 거센 바람에 폭우까지 쏟아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배소현(31)이 러프에서 친 두 번째 샷이 정확히 그린에 안착했다. 핀과의 거리는 10.7m. 그린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음에도 퍼팅은 과감했고, 퍼터를 떠난 공이 빠르게 굴러 홀 속으로 사라지자 배소현은 그제야 환한 웃음을 보였다.
배소현은 이날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E1 채리티오픈 최종 3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4개를 맞바꿔 이븐파 72타를 쳤다. 최종 합계 9언더파 207타를 적어낸 배소현은 2위 박도영(28·6언더파)을 3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데뷔 후 154번째 대회에서 따낸 생애 첫 우승이다. 배소현은 “1부투어 우승은 이번이 처음인데 기분이 정말 좋다”며 “스스로에게도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주위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KLPGA투어 8년 차 배소현은 대기만성형 골퍼다. 남들보다 늦은 중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그는 또래들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고교 진학을 포기할 정도로 골프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격차를 좁히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2011년 프로에 입문한 그는 오랜 2부투어 생활 끝에 2017년이 돼서야 1부인 KLPGA투어에 데뷔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KLPGA투어 무대에서도 부침은 계속됐다. 2019년에는 시드를 잃고 다시 2부투어로 내려가야 했고, 그해 캐디백을 메고 투어를 함께한 아버지를 여의는 슬픔까지 겪었다. 그러나 배소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꾸준한 성적’이라는 목표 하나로 노력을 거듭한 그는 다시 KLPGA투어로 돌아온 2020년부터는 안정적으로 시드를 유지하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때를 기다렸다.
배소현의 첫 우승도 자신의 골프 인생처럼 쉽지 않았다. 2타 차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섰지만 전반에 보기만 2개를 범해 선두 자리를 내줘야 했다. 11번홀까지 보기 없이 이글 1개와 버디 5개를 잡아내 선두가 된 박도영과의 격차가 한때 3타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배소현은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박도영이 후반 13번홀부터 4연속 보기를 범하는 바람에 다시 1타 차 단독 선두로 올라선 배소현은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16번홀(파3)과 17번홀 연속 버디로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이날 공동 3위(5언더파)를 기록한 박민지(26)는 상금 4612만5000원을 획득해 누적 상금 57억9778만3448원으로 장하나를 제치고 KLPGA투어 누적상금 1위 자리에 올랐다. 그는 “기록 상단에 제 이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여주=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