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법 시스템의 국민 신뢰도는 세계 꼴찌권이다. 영국 싱크탱크(레가툼연구소)의 지난해 조사에선 167개국 중 155위였다. ‘삼류 정치’(114위)보다 한참 순위가 낮으니 ‘사류·오류 사법’이라고 불릴 판이다. 신뢰 추락 중심에 대법관의 질적 저하와 타락이 자리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의 퇴행부터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명수 대법원’은 “31년간 재판만 해온 사람의 수준을 보여주겠다”던 호언장담과 정반대였다. ‘TV토론에선 거짓말해도 된다’는 판결이 잘 보여준다.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무효, 쌍용차 옥쇄파업 손배소 무죄 등도 논란을 키웠다. 재판 지연에 따른 정의의 지연은 전 국민을 고통으로 몰았다. 재판 외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재판 충실화 예산’을 대법원장 공관 개축에 전용해 아들 부부를 입주시켰다. 버스·지하철로 첫 출근하며 ‘공식업무가 아니라 관용차를 못 썼다’던 그의 말은 부메랑이 됐다.
권순일 전 대법관의 ‘기여’도 빼놓을 수 없다. 대장동 주범 김만배가 ‘형님’으로 불렀다는 그는 수없는 구설에 올랐다. 변호사 등록 없이 변호사로 일하고, ‘이재명 재판’ 관련 금품을 받았다는 어마어마한 혐의도 받는다.
그런 그가 27일부터 한 법무법인 대표로 출근한다는 소식이다. ‘권순일다운’ 행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임기 후 60% 정도가 재취업하는 대법관 행보에 대한 시선은 따갑다. 전관예우의 한가운데로 스스로 진입하는 모양새여서다. 대법관 출신은 ‘제왕적 전관’이다. 소장에 이름만 걸어도 ‘도장값’이 수천만원이고 10억원대 연봉도 예사다. 엄밀히 말하면 정의를 왜곡한 대가로 얻는 부당수익이다.
얼마 전 의대 증원 가처분 소송이 기각되자 의사협회장은 “판사가 대법관 자리를 제안한 정부에 회유당했을 것”이라고 했다. 근거 없는 주장이지만 조롱 대상으로 전락한 대법관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실력이 없는데 줄을 잘 서서 대법관 된 이들이 넘친다는 수군거림마저 만만찮다.
대법관의 영문 표기는 ‘정의’(Justice), 대법원장은 정의의 수장(Chief Justice)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정의의 리스크’로 인식된다. 안타까운 자업자득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