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SK그룹 ‘실세 부회장’ 4명이 동시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반도체, 배터리 등 주력 사업이 한꺼번에 안 좋아진 탓이었다. 그룹에 위기감이 엄습했다. ‘해결사’가 긴급 투입됐다. 최창원 부회장이었다. 그는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 동생이자 최종건 SK 창업주의 아들이다. ‘핏줄’이란 이유로 불려 온 것은 아니었다. 경영권은 형제, 부자끼리 나눌 때도 다툼이 잦다. ‘사촌인데도 불구하고’ 최태원 회장이 왜 그를 불러들였는지 주목해서 봐야 한다.
신간 <대단한 기업의 만만한 성공 스토리, 대기만성>에는 SK 등 한국 대표 기업 23곳의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스토리는 단순히 흥미를 끌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기업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중요한 장면을 포착해 이야기로 엮었다. 휴대폰, 반도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세계 1등 상품을 5개나 보유하고도 늘 위기란 소릴 듣는 삼성전자, 숨겨진 배터리 고수 고려아연, 조선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다양한 사업을 거느린 HD현대 등이 나온다.
저자는 안재광 한국경제신문 기자다. 17년 넘게 기업과 산업, 주식시장을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경 공식 유튜브 채널 ‘한경코리아마켓’에서 기업 스토리 관련 동영상을 2년 가까이 올리고 있다. 책은 동영상에서 다뤄진 기업 중 반도체, 배터리, 방위산업, 기계, 중공업, 바이오, 석유화학 등 7개 산업 내 ‘간판 기업’에 관한 것이다. 누적 조회 수가 600만 회를 넘길 정도로 유튜브 채널에서 많은 사람이 동영상을 애청했다.
안 기자는 주식 투자 인구가 1400만 명을 넘겼는데 정작 기업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는 사실에 주목해 책을 썼다. 주식 매매가 투기가 아니라 투자가 되려면 기업과 산업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주식 투자는 기업의 지분을 사는 행위이고, 이는 곧 동업을 의미한다. 동업을 하는데 동업자가 누구인지,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 정도는 알자는 것이다.
취업준비생이나 기업 스토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책에서 다룬 기업은 분명 대단한 회사가 맞지만 저자의 추천 종목은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