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이 뭐더라…"
요즘 연예계에 이름 잃은 배우들이 속출하고 있다. 배우 변우석, 박성훈, 박지환의 이야기다. 이들은 드라마, 영화를 통해 '인생캐'를 얻었으나, 극 중 배역의 이름으로 불리는 해프닝의 주인공이 됐다.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유재석은 변우석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선재씨"라고 불러 당혹감을 드러냈다. 이에 그는 "선재라고 부르셔도 된다"며 웃었다.
'선재 업고 튀어'로 새로운 청춘의 페르소나로 불리게 된 그는 "요즘 항상 선재라고 불린다"며 "어리둥절하고 심장이 벌렁벌렁 뛴다"고 소감을 밝혔다.
1991년생인 그는 2010년 모델로 먼저 데뷔했다. 모델 활동 당시 홍석천으로부터 "배우상"이라는 평가받았던 그는 2016년 노희경 작가의 tvN '디어 마이 프렌즈'를 통해 진짜 배우가 됐다.
이후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MBC '역도요정 김복주', tvN '명불허전' 등 많은 작품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는 "거짓말 안 하고 오디션에서 100번 이상 떨어졌다"며 "이렇게까지 떨어져도 되나 싶은 정도였다"고 했다.
카메라 울렁증까지 생긴 적도 있었지만 그는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갔고 2020년 박보검과 함께 tvN '청춘기록'에 출연하면서 주연급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후 KBS2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 영화 '소울메이트' 등에 출연하며 대중의 눈도장을 받았다.
지난해 tvN '힘쎈여자 강남순'에선 서늘한 빌런 역할까지 소화하던 그는 배우 데뷔 8년 만에 자신의 첫 인생작 '선재 업고 튀어'를 만나게 된 것. "좌절하지 않고 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애 썼다"는 그는 청량미 넘치는 10대의 선재부터, 화려한 조명 속에서 노래하는 20대의 선재, '이른바 '으른미(어른미)' 넘치는 성숙한 30대의 선재 모습까지 표현해냈다. 여기에 상대 배우인 임솔 역의 김혜윤과 찰떡같은 로맨스 케미로 안방극장 여심을 사로잡고 있다.
'선업튀' 방송 후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변우석의 개인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846만에 달한다. 많은 팬이 '변우석'이란 이름 대신 '선재야~'라고 부른다. 어떤 기혼 여성은 "남편의 이름을 선재로 저장해 놓으니 화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해 화제가 됐다.
방송가 러브콜도 늘었다. 그는 "예전에 비해 드라마, 영화 대본이 10배~20배 들어온다고 하더라"라고 귀띔했다.
배우 전재준, 아니 박성훈은 이름 잃은 배우의 '원조' 격이다.
1985년생인 박성훈은 '대학로 아이돌'로 불릴 만큼 유명한 연극배우였다. 그는 2008년 영화 '쌍화점'으로 매체 연기를 시작하고,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박성훈의 '터닝포인트'라 할 작품은 바로 2022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더 글로리'다. 이 작품에서 그는 살벌한 악역 전재준 역을 맡아 '눈이 돌아있는' 충격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대중의 뇌리에 제대로 박혔다.
그는 '더 글로리' 이후 ENA '남남', '유괴의 날' 등의 작품에 출연했으나 박성훈이란 이름보다 전재준이라고 불리는 일이 많았다. 다행히(?) 최근 '눈물의 여왕'이 인기를 끌면서 이번엔 극 중 캐릭터인 윤은성으로 불리게 됐다. 개명까지 고민했다는 그는 "이름이 평범해서 기억하기 힘들어 그런 것 같다"며 "제 이름을 검색하면 65명 정도 나오는데 박성훈 중에 가장 유명한 박성훈이 되자고 생각했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계엔 박지환이 있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만난 '범죄도시'는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작품이다. 트리플 천만이란 대기록을 세운 이 시리즈에서 박지환이 연기한 장이수는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유쾌한 케미를 선보이며 신스틸러에서 메인 캐릭터로 성장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마석도의 부탁을 못 이기는 척 들어주며 비공식 조력자 '폴리스 다크 아미'로 맹활약 한다. 장이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범죄도시'의 큰 재미이자 활력소다.
박지환이 쿠팡플레이 'SNL코리아'에 등장 했을 때도 신동엽은 "천만 배우 장이수"라고 소개했고, '호스트 장이수'라고 자막이 쓰였다.
이처럼 배역 이름으로 불리는 경험은 배우들에게 큰 칭찬이자, 큰 숙제이기도 하다. 주연 배우로 거듭나려면 다양한 캐릭터를 체화해야 한다. 하지만 특정 캐릭터로 오래 불리게 되면 배우에게 돌아가는 작품, 역할이 한정적으로 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배우들이 '퐁당퐁당' 전략을 사용한다. 전작과 차별화되는 작품을 차기작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한때 '납득이'로 불렸던 배우 조정석이 '이름 잃은 배우들'의 롤모델이다. 원래 유명 뮤지컬 배우였다가 영화 '건축학개론'을 통해 '납득이'로 혜성처럼 등장한 조정석은 2015년 tvN '오 나의 귀신님', 2016년 SBS '질투의 화신'으로 잠재력을 터트리며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났다. 박성훈은 "조정석 형이 '납득이'로 불렸던 게 생각이 난다"며 "열심히 하시니 지금은 조정석이라 불리잖아요. 저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해야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신인이나 중고 신인들은 이렇게 캐릭터로 불리는 것 자체가 인지도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고 본다"며 "일단 캐릭터가 화제가 되어야 배우에 대한 주목도도 올라간다.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이렇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큰 기회를 얻고, 연기적으로 준비된 배우들은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