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파워 이 정도일 줄은…미국서 돈 쓸어 담았다 '대반전' [노유정의 의식주]

입력 2024-05-25 11:59
수정 2024-05-25 18:20

화장품이 우리나라 수출 효자 품목으로 떠올랐습니다. 케이팝에 인기에 힘입어 최근 미국과 일본, 유럽에 진출한 덕택입니다. 과거 화장품 기업들의 최대 시장은 중국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등을 겪으며 ‘탈중국’은 필수 전략이 됐지요.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알려지며 화장품 기업들도 실적 신기록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 화장품 산업이 오랜 부진을 벗어나 구조적인 변화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입니다.

화장품의 봄 시작됐다
올해 1분기 주요 화장품 기업들은 모두 호실적을 썼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1분기 영업이익은 72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9% 증가했습니다. 실적이 감소할 것으로 봤던 증권가 컨센서스를 완전히 비껴갔지요. LG생활건강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3.1% 늘었습니다. 영업이익이 늘어난 건 2021년 3분기 이후 10개 분기 만입니다.


화장품을 개발 및 생산해주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들은 실적 개선세가 더 두드러집니다. 국내 대표 ODM 기업인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보다 229.1%, 168.9% 늘었습니다. 모두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입니다.

북미, 일본 등 해외 실적이 고루 성장했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아모레퍼시픽 1분기 미주 매출은 40% 뛰었고, 코스맥스도 1분기 미국 매출만 43% 늘었습니다.


어떻게 늘었냐고요?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샌들러에 따르면 미국 10대들은 화장품 사는 데 용돈을 가장 많이 씁니다.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뷰티 브랜드 중 2위를 차지한 ‘레어 뷰티(Rare Beauty)’는 가수 셀레나 고메즈가 만든 브랜드인데, 지난해 매출 3억달러(약 4107억원)를 기록했습니다.

이 레어 뷰티의 색조 화장품을 만들어주는 기업은 국내 기업 씨앤씨인터내셔널입니다. 제품 개발부터 생산까지 해주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 회사로,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631억원)을 냈지요. 최근 이렇게 미국, 유럽 등서 한국 ODM사들한테 러브콜이 많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글로벌 화장품 수출국 된 한국수출 다변화는 화장품 산업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1분기 화장품류 수출은 23억달러(약 3조2000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화장품 수출 대상국은 175개국으로 역대 가장 많았고, 그중 110개국에서 최대 실적을 냈습니다. 2021년 화장품 전체 수출의 절반 이상(53%)을 차지했던 대중 수출은 1분기 26.6%로 줄었지요.

국가별로 볼까요.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지에서 수입 화장품 중 한국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화장품 두 번째로 많이 파는 국가입니다. 일본에선 1위지요. K-뷰티가 마침내 탈중국에 성공했다는 방증입니다.


화장품 기업들의 주가도 전반적으로 상승세입니다.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올 들어 지난 24일까지 30.5%, LG생활건강 주가는 28.5% 올랐습니다. 코스맥스는 36.9% 뛰었고요. 코스피가 올 들어 이날까지 0.7% 보합한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성과죠.

올해 코스피 1호로 기업공개(IPO)를 한 에이피알은 방송인 유재석이 광고하는 메디큐브를 보유한 회사지요. 공모주 청약 경쟁률은 1111대 1로 증거금 약 14조원이 몰렸습니다. 메디큐브도 요즘 아마존에서 잘 팔리는 브랜드 중 하나죠. 중국에 울고 웃던 화장품주국내 화장품 기업들은 대표적인 중국 관련주였지요. 2000년대 중국이 경제 성장을 할 당시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늘기 시작했고, 화장품은 가성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화장품 종주국인 유럽 제품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면서도 중국이 좋아하는 한방과 인삼 마케팅을 했거든요.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LG생활건강의 더후도 한방 화장품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시작된 한류는 여기에 불을 붙였지요. 드라마가 중국에서 흥행하며 한국 화장품에 대한 인기도 급성장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2015년 나란히 매출 5조원을 넘기며 역대급 실적을 썼습니다.


그러나 2016년 사드의 한국 배치 결정으로 중국의 ‘한한령’이 시작되며 상황은 뒤바뀌었지요.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사라졌고, 현대차와 롯데 이마트 등 중국에 진출했던 한국 기업들은 사업을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화장품이 중국 소비주라는 점은 이후 양날의 검이 됐습니다. 중국과 연관된 정치·외교 이슈에 따라 주가가 좌우됐지요. 중국 경기가 안좋으면 주가가 떨어지고, 북한과 미국 관계가 좋아지면 올랐습니다. 코로나19 때 화장품주가 폭락한 것도 중국 관련주로 묶인 영향이 컸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부는 애국소비(궈차오), 자국산 제품을 선호하는 열풍은 또다른 장애물입니다. 수출·내수 ‘쌍끌이’ 호실적 기대중국에 너무 크게 데여버린 국내 화장품 기업들의 최우선 과제는 ‘다각화’가 됐습니다. 사실 글로벌 화장품 시장 1위 국가는 미국이기도 합니다. 중국이 2위, 일본이 3위죠.

미국, 유럽, 일본은 중국과 달리 화장품 선진국입니다.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 로레알이 프랑스 기업이고, 에스티로더의 나라 미국은 색조 화장이 발달했습니다. 일본은 시세이도, SK-II 같은 글로벌 브랜드를 보유한 국가지요.

마침 구원투수가 된 게 케이팝이었습니다. 블랙핑크, 아이브 등 아이돌 그룹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자 자연스레 K-뷰티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지요.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 모델로 블랙핑크 로제, 헤라 모델로 제니를 쓰며 글로벌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SNS는 한국 인디 브랜드의 성공을 가능케 했습니다. 미국 인플루언서들이 제품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중소기업들의 제품들도 세계 최대 e커머스 아마존의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해외에서의 호실적이 국내로 이어지는 선순환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1분기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약 340만명으로 코로나19 이후 분기 기준 가장 많았습니다. 중국 관광객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덜 왔지만 미국, 대만 홍콩 방문객들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많았습니다.

이들의 쇼핑 목록에 화장품이 빠질 수 없지요. 국내 1위 헬스&뷰티(H&B) 스토어 CJ올리브영에서는 지난해 외국인 매출이 1년 만에 660%, 7배 이상 늘었답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4배 이상입니다. 올리브영은 이때를 노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일본에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상반기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사무실을 열 계획입니다.

기획·진행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촬영 이종석·소재탁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이종석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