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이 시총보다 많으면 저평가?…배당 적은 기업들은 주가 '비실'

입력 2024-05-22 18:17
수정 2024-05-23 01:22
순현금이 시가총액보다 많은 ‘넷넷(net-net) 종목’ 중 3분의 2가 올 상반기에 시장 평균보다 저조한 주가 상승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종목은 배당수익률이 높을수록 주가가 많이 올랐다. 전문가들은 “기업 내부에 돈이 많아도 주주환원을 하지 않으면 ‘밸류 트랩’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22일 증권가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밸류업 상승장이 시작되기 직전인 올 1월 22일 기준 넷넷 종목은 71개였다. 넷넷 종목은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이 고안한 개념으로, 기업이 보유한 순현금(유동자산-부채)이 시가총액보다 많은 종목을 뜻한다. 주가순자산비율(PBR)에는 당장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도 포함되지만, 넷넷 종목은 빚을 제외한 유동자산만 반영한다. 시장에서 저평가된 기업을 골라내는 데 PBR보다 유효한 지표라는 평가가 많다.

이들 71개 종목의 주가는 지난 3개월간 평균 10.44%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10.51%)에 못 미쳤다. 넷넷 종목의 주가 상승률은 배당수익률에 따라 좌우됐다. 이들 종목 중 3개월 전 배당수익률이 6%가 넘은 기업은 주가가 평균 17.95% 올랐다. 배당수익률이 4% 이상~6% 미만 기업은 6.39% 올랐고, 2% 이상~4% 미만 기업과 2% 미만 기업은 각각 3.08%, 2.91%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넷넷 종목의 주가 상승률이 시장 평균과 비슷한 건 국내 증시에 밸류 트랩에 갇힌 기업이 많다는 걸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밸류 트랩은 기업 자산 규모나 이익 창출 능력에 비해 시총이 작은, 저평가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은 “아무리 저평가 상태여도 주주환원이 잘 안되는 기업에는 일반 주주가 투자할 유인을 느끼지 못하고, 이에 따라 주가가 정체될 수 있다”며 “이런 기업은 거버넌스를 개선하거나 대주주의 주주 환원 의지를 높이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이날 종가 기준 배당수익률이 높은 넷넷 종목으로는 에이블씨엔씨, 넥스틸, SNT에너지, 한국쉘석유, 동아타이어 등이 있다. 에이블씨엔씨의 배당수익률은 15.31%, 넥스틸은 8.89%에 달한다. 이들 중 넥스틸은 최근 회계연도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이 10%로 최근 10년 국내 상장사 평균(26%) 대비 낮다. 배당성향이 낮다는 건 향후 배당금 확대 여력이 더 있다는 뜻이다. SNT에너지(23.2%) 동국홀딩스(20.8%) 등도 배당성향이 시장 평균 대비 낮은 종목으로 꼽혔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