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대폭 삭감한 연구개발(R&D) 예산을 내년엔 사상 최대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R&D를 제외한 다른 부처 예산의 구조조정 강도는 한층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 R&D 예산은 30조원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R&D 예산은 지난해 31조1000억원에서 올해 26조5000억원으로 4조6000억원 줄었다. 다만 지난해 R&D 예산 중 1조8000억원은 국제 기준에 따라 비(非)R&D 예산으로 전환돼 실질적인 R&D 예산 규모는 29조3000억원 수준이라는 것이 기재부 설명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예산 대폭 확대’ 방침을 밝히면서 삭감 이전 수준인 30조원대를 회복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올해보다 5조원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R&D 예산이 대폭 늘어나면 다른 분야 예산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며 매년 예산 편성 때마다 20조원대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올해 예산지출 증가율은 2005년 이후 최저 수준인 2.8%인데, R&D 예산이 14.8% 급감한 영향이 컸다.
정부는 지난해 9월 ‘2023~2027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년 재정지출 규모를 684조4000억원으로 제시했다. 올해(656조8000억원)보다 4.2%(27조6000억원) 많은 액수다. 같은 기간 공적연금과 교부금 등 법으로 지출 규모가 정해져 있는 의무지출 증가액은 25조1000억원이다. 총지출과 의무지출 증가액이 거의 비슷하다. 이 중기 계획대로 가려면 기존 예산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더욱이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담긴 ‘4.2%’라는 내년 지출 증가율이 ‘R&D 예산 복구’ 방침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정부가 할 일이 태산이지만 재원은 한정돼 있어 마음껏 돈 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건전재정 기조를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내년 예산 지출 증가율이 5%대까지 높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채 발행을 최소화하면서 신규 예산을 확보하는 방안은 재량지출 구조조정 외에는 없다는 것이 기재부의 판단이다.
박상용/강경민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