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영주권을 취득한 뒤 세금을 내지 않는 외국인의 영주 자격을 취소하는 법률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재일동포 사회는 ‘차별’이라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 중의원(하원) 법제사법위원회는 개발도상국 출신 외국인 기능직 취업을 장려하는 기능실습법과 영주 자격 취소 요건을 담은 출입국관리법 등 개정안을 자민당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21일 중의원에서 처리하겠다는 목표다.
법안이 통과되면 외국인 기능직이 1~2년 근무 후 같은 업무 분야로 직장을 옮기는 이직이 가능해진다. 일정 수준 기술 연수를 한 뒤 취업하는 ‘기능 실습’을 대체하는 ‘육성 취업’ 제도다. 기존 기능 실습 제도에서는 이직이 인정되지 않아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경우가 많았다.
육성 취업 기간은 3년이다. 보다 기술 수준이 높은 ‘특정 기능’으로 전환하기 쉽게 해 장기 취업의 길을 열어준다. 시험 등을 통과하면 최장 5년간 취업할 수 있는 ‘특정 기능 1호’, 이후 재류 자격 갱신 제한을 받지 않는 ‘특정 기능 2호’도 될 수 있다. 이 경우 가족을 동반할 수 있고, 향후 영주권 신청도 가능하다.
문제는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영주 허가 제도를 강화한 것이다. 법안은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고의로 납부하지 않으면 영주 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허위 신고 등을 제외하고는 영주 허가를 취소할 방법이 없어 납세를 게을리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영주권을 보유한 외국인은 약 88만명으로 전체 일본 재류 외국인의 약 27%다. 한국 국적의 영주권자는 7만5000여명이다. 통상 10년 이상 일본에 체류했고 징역 등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세금과 연금 등 공적 의무를 다하고 있을 경우 영주권을 받게 된다.
재일동포 사회는 ‘세금 미납 시 영주권 취소’에 크게 우려하고 있다.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측은 “영주 자격은 일본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에게 생활 기반”이라며 “세금을 체납하지 않는 좋은 외국인만 받아들이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 재일동포 사업가는 “만약 사업에 실패해 세금을 못 내고 일본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면 어디서 사느냐”고 우려했다. 또 다른 재일동포는 “세금을 체납하면 일본인과 동일하게 법률에 따라 독촉, 압류 등 제재 조치하면 된다”며 “외국인이기 때문에 영주 자격을 취소한다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꼬집었다.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은 일상에서 종종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20년엔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4세인 30대 여성이 풍진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의사로부터 “세금은 내고 있냐”는 차별적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도 반발하는 모습이다. 입헌민주당은 “외국인의 미납보다 일본인의 미납 비율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영주 자격 취소 대상에 대해 “일부 악질적인 경우에 한정된다”고 설명했다. 일본 여야는 수정 협의를 통해 “(영주권자의) 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다”는 규정을 부칙에 포함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