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기자회견 직후 대통령실 참모들과 비공개 만찬을 하고 “자신감 있게 국정을 운영하고 변화하자”고 주문했다. 야당 요구나 여론에 밀려 변화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앞장서서 바꾸자는 취지다. 구체적으로는 소통 방식이나 정치권과의 관계 등은 확실하게 바꾸되, 경제 및 민생과 관련해선 국정 운영 기조를 확고히 지키며 더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쳐나가자고 했다는 전언이다.
정부가 △국민소득 5만달러 달성 △중산층 70% 육성 △수출 5대 강국 도약 등 구체적인 임기 내 목표치를 설정한 배경에는 이런 윤 대통령의 ‘경제 자신감’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만 해도 윤 대통령이 장기 경제 목표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대로 치솟았고, 전 분기 대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마이너스로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1.3%를 기록해 시장 전망(0.5~0.7%)을 크게 웃도는 등 최근 경제지표가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레고랜드 사태’ 등 시장을 뒤흔든 위기도 일단락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경제 비전을 제시할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경제”라고 말할 정도로 윤 대통령이 경제 성장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데다 각 부처에도 확실한 목표를 제시해 공직자들의 업무 동력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확정한 경제 비전이 달성하기 쉬운 목표는 아니다. 지난해까지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3000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2026년 한국의 1인당 GDP가 4만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5만달러에 이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확실하게 민간 중심 경제로 체질을 전환하고,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제대로 조성한다면 5만달러 달성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최근 성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60%대 초반에 머물고 있는 중산층 비중을 70%로 확대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정부 관계자는 “민간 기업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각종 규제를 풀고, 국민이 자산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기업의 주가를 제대로 평가하자는 ‘밸류업 프로그램’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는 설명이다. 수출 5대 강국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은 수출 8위 국가였다. 5위인 일본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정부가 경제외교에 더 힘을 쏟아 ‘경제영토’를 넓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과 로드맵은 다음달 발표하는 경제 3개년 계획에 담긴다. 정부는 일반적으로 6개월~1년 단위의 경제정책 방향을 수립하지만, 장기 프로젝트 및 국민적 대타협이 필요한 과감한 정책 등을 담기에는 정책 실행 기간이 짧다는 지적이 많았다. 보통 새 정부가 출범하면 대통령 임기 5년간의 경제 비전을 발표하지만, 이번 정부는 임기 초반을 지난 정부의 ‘반(反)시장 정책’을 되돌리는 데 집중했다.
정부 관계자는 “당면한 과제가 아니라 추진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야당과 여론을 설득해야 하는 정책이 3개년 계획에 주로 담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슬로건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