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경쟁과 차별 없는 자유무역’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최대 수혜국은 어디일까. 중국? 미국? 한국은 어떨까? 세계의 공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고성장을 구가해온 중국이야말로 낮아진 국경의 큰 수혜국이었다. 1990년대 장기 호황을 설명할 길이 없어 ‘신경제’라고도 했던 미국 역시 그렇다. 상품·서비스 교역을 넘어 우수 인재들을 자국으로 끌어들인 데는 WTO 체제의 개방정신이 한몫했다. ‘수출로 사는 나라’ 한국도 큰 틀에선 마찬가지다.
‘지구촌 단일경제’를 구축해온 WTO 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중국산 BBC(배터리 바이오 반도체칩) 등을 겨냥한 엊그제 미국의 관세폭탄은 무역전쟁이 한층 거칠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최근 중국의 야심적 수출품인 전기차는 25%에서 100%로, 반도체·태양광 셀은 25%에서 50%로 관세가 오른다. 무관세였던 의료기기에도 50%가 부과된다. 미국 무역법 301조가 ‘슈퍼 301조’라는 별명 값을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고관세 정책에 다소 부정적이던 조 바이든 정부가 한 수 더 둔 격이다. 트럼프 때 최대 25%였던 중국 제품 관세를 최대 4배로까지 올리니 ‘관세 폭격’을 퍼붓는 꼴이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즉각 “WTO 규칙 위반”이라는 비난과 함께 “모든 필요한 조치로 정당한 권익을 지키겠다”는 외교부 성명이 나왔다. 반도체 장비 수출제한 등 미국의 대형 무역 규제가 나올 때면 중국이 언급하는 핵심 반박 논리가 ‘WTO 위반’이다. 물론 중국 역시 툭하면 WTO 정신을 위반했다. ‘사드 보복’ 때 롯데 등 자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때리기가 그렇고, 지금도 계속되는 비관세장벽의 한한령(한류 콘텐츠 제한)이 그렇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와중에 슈퍼 301조를 동원한 미국의 관세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으스스해진다. 미국 시장이 막히면 중국의 여타 지역으로 밀어내기 수출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국에 미칠 파장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공들여 구축한 WTO 체제가 와해되면 모두 손해지만, 지금은 자유무역의 당위론을 하소연할 데도 없다. 산업·기술전쟁, 관세전쟁이 빚어지는 격랑의 시대, 정부도 기업도 더 긴장하는 수밖에 없다.
허원순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