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원단체가 정부에 3000명 이상의 의대 정원 증원을 건의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협회 관계자에대한 의사들의 집단 '신상털기'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 대표격인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까지 나서 협회 관계자가 있는 병원을 '저격'해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정부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압박·공격하는 관행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14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대한종합병원협의회(종병협의회)의 임원 명단이 의사 커뮤니티에 퍼지고 있다. 이들의 신상과 소속 병원 등을 공개해 비판하기 위한 목적의 글들이다.
이 협의회에 대한 비판 전선엔 의사 단체 리더들도 뛰어들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이날 자신의 SNS에 "(협의회의 회장이 원장인) 용인 신갈 강남병원의 의료법, 보건범죄단속에 관한특별법, 의료사고, 근로기준법 위반, 조세포탈, 리베이트, 기구상 수술 등 사례를 대한의사협회에 제보해 주시기 바란다"고 글을 올렸다.
임 회장은 다른 SNS 글에서는 "돈 없어서 치료 못받는 취약계층은 모두 용인 신갈 강남병원으로 보내주시기 바란다"며 "의료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라고 생각하신답니다"며 "정영진 원장님 그분의 꿈을 이루어 드립시다"고 비꼬기도 했다.
의대 증원에 대해 다른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의협 회장까지 나서 특정 의사 및 병원, 협회에 대한 집단 공격에 나선 셈이다.
임 회장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달에는 의대 증원을 찬성하는의견을 낸 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장을 "수술실에서 무자격자에게 의사 업무를 시켜 왔다"며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종병협의회는 7개 이상의 필수 진료과를 운영하는 종합병원 중심의 단체다. 이들 병원은 심각한 의사 구인난 등을 이유로 의대 증원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종병협의회가 의사 집단 내의 공적이 된 것은 지난 10일 의대정원 증원 효력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재판부에 제출한 자료 중 이 단체가 낸 의견 회신 자료가 포함되면서다.
이 협의회는 자료를 통해 매년 3000명씩 5년간 1만5000명을 늘리고, 이후에는 5년간 1천500명(의대생) 증원하자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10년간 매년 의대생을 1500명 증원하고, 의전원생 1000명을 5년간, 해외 의과대학 졸업생 면허교부 및 해외의대 졸업 한국인을 500명씩 5년간 각각 늘리자고 제안했다.
정부가 제안한 5년 간 매년 2000명 증원안보다 더 큰 증원 규모를 담은 것이다. 협의회는 자료에서 증원 배경으로 "대학병원 및 의료원을 포함한 종합병원의 응급실 및 수술과 등 필수의료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없고, 심각한 구인난과 이로 인한 의사 인건비 급등으로 종합병원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협의회의 제안 사실은 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한 의료계 측 변호인이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자료를 전날 언론에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이처럼 종병협의회에 대한 의사 집단의 압박에 정부는 공식적으로 우려의 뜻을 표했다. 박민수보건복지부 2차관은 14일 열린 의사집단행동중앙수습본부 회의에서 "지금도 의사단체에서는 의대 증원 찬성 의견을 낸 인사들을 공격하고 압박하는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의사단체가 단체내부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압박, 공격하는 관행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의료계가 요구하고 있는 교육부의 의대정원 배정위원회 위원 명단 공개에 대해서도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전공의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은 전날 자신의 SNS에 "배정심사위원회 명단도 공개하시죠. 기자들이 많이 기다릴 겁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박 차관은 "(명단 비공개는)위원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보호하고, 향후에도 관련 위원회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되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밝혔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