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일 대통령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어업위)는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쌀 등 농산물의 가격을 보전하는 정책은 오히려 수급 조절 기능을 약화해 공급 과잉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강행처리를 예고한 양곡관리법(양곡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법(농안법) 개정안에 우려의 목소리였다. 야당의 법안처리 강행에 대해 한국국산콩생산자연합회, 한국농축산연합회,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등 농민단체들도 잇따라 반대성명을 내고 있다. 장태평 농어업위원장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기후에 대응해야 하는 농업은 고등수학"이라며 "지금이야말로 정치권이 농민단체·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미래 한국농업 정책을 세울 때"라고 말했다.
한국 농업이 위기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농촌소멸, 기후변화로 농산물값의 급등, 갈수록 깊어가는 도농격차 등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농어업위 사무실에서 장태평 농어업위원장을 만나 최근 야기되고 있는 농업의 문제를 물었다. 장 위원장은 과거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시절, 농어촌 예산을 짜면서 농업과 연을 맺었다. 이후 40년 이상 농업 한 분야에 관심의 끈을 이어온 농업정책 전문가다. 이명박정부 시절(2008~2010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농협 구조개혁을 지휘하기도 했다.
▶양곡법 개정안이 왜 논란인가요?
"양곡법은 쌀 가격을 보장해 주겠다는 정책이다.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매입해야 하는 양곡법이 통과되면 농민들은 남아도는 쌀 생산에만 집중하게 된다. 쌀 수매비용과 보관비로 예산이 사용되면 미래 스마트 농업과 청년농 육성을 위한 지원이 줄게 된다. 여기에 다른 작물 생산이 줄어 식량안보의 위기도 올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쌀 매입비는 1조2266억원, 보관비는 4061억원으로 총 1조6327억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농안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큽니다.
"농안법은 특정품목의 농산물값이 기준치 이하로 내려가면 정부가 그 차액을 생산자에게 지원하는 '가격보장제'다. 농민들은 차액 보장이 되는 농산물만 재배할 것이다. 나머지 품목은 보장이 안되니, 재배를 안하게 되고 결국 수급 불안정을 초래하게 된다. 또한 '농산물가격안정심의위원회'에서 정하는 특정품목이 되기 위한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로 반영 품목이 늘면 덩달아 정부재정도 눈덩이처럼 늘게 될 것이다. 농안법은 '농산물 가격안정법'이 아니라 '농산물 가격불안정법'이다. 선진국에서도 가격을 직접 보장하는 정책을 농가의 소득안정 정책으로 이미 전환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쌀 공급과잉을 막고 수입 농작물의 대체 생산을 위해 전략작물직불제를 시행중이다. 논에서 벼 대신 밀,콩,옥수수 등을 재배하는 농업인에게 지급하는 직불금이다. 여기에 가루쌀·친환경쌀·고품질 쌀을 재배할때도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 한해동안 약 10만톤의 쌀 생산을 줄였다.
▶최근 통계청은 우리나라 농가 100만가구가 붕괴됐다는 자료를 냈습니다.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어쩔수 없다. 대신 고령농이 자연스레 은퇴하고 청년농이 바톤을 이어받아 활기찬 농촌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을 세워야 한다. 네덜란드는 농업인구 1%가 GDP의 8%를 생산하고 있다. 농업의 기업화가 되면 가능하다. 삼성전자가 강해서 반도체국가로 부상했듯이 농업경영체 강해지도록 해야 한다. 젊은 청년농이 운영하는 농업회사, 영농조합법인 등을 키워야 한다."
▶영농조합법인을 키우고 있는 사례가 우리나라에 있나요
"경북 문경 늘봄영농조합의 주주형 공동영농이 대표적이다. 농가들은 농지와 경영을 위임하고 늘봄영농조합은 들녘 전체를 책임 경영한다. 영농활동에 참여한 농가에는 농기계작업 30만원, 일반 농작업 9만원씩 일당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말 늘봄영농조합은 이모작 공동영농에 참여한 농가에 평당 3000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작년 한해 80농가(110ha)가 참여했고, 들녘 전체에 대한 배당금만 총 9억 9800만원에 달했다. 고령농은 농사일에서 해방되고 소득안정도 얻게 되어 1석2조 효과다. 이밖에 96농가가 통합하여 논을 녹차밭으로 전환 경남 사천 다자연영농조합도 모범사례다."
농어업위는 지난 3월 CJ제일제당 등과 '쌀 수출산업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다. K푸드 인기에 힘입어 쌀 가공식품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전남 해남의 대규모 간척지를 활용 세계 쌀 시장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인디카(장립종) 품종을 대량 생산하는 프로젝트다. 농어업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주재배 품종인 자포니카(단립종) 쌀의 수출경쟁력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금사과'가 이슈가 됐습니다. 사과 수입을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큽니다.
"농작물은 기상이변의 영향이 크다. 사과는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부사의 경우 가을에 수확한다. 지난해 봄철 냉해와 여름철 폭우, 탄저병 등으로 사과 생산량이 재작년 56만톤에서 39만톤 으로 뚝 떨어졌다. 생산량이 크게 줄어 사과가격이 오른 것이다. 농산물은 재배시기와 기간에 따라 가격이 다소 차이가 난다. 소비자들이 이런 것을 이해하면 좋겠다. 무분별하게 과일 시장을 개방하면 외래 병해충 유입될 수 있다. 오히려 국내 농산물의 생산기반에 악영향을 끼칠수 있다."(농림축산식품부는 현재 사과 수입 허용을 요청한 11개국과 검역협상을 논의중이다. 일본산 사과의 경우 8단계 가운데 5단계까지 진척됐다.)
▶장관 시절에도 농가소득 안정을 강조하셨습니다.
"기후변화 시대, 농가 경영 안정을 위해서는 농가의 소득파악이 우선돼야 한다. 농가소득정보 체계화가 필요한 이유다. 농지는 사업용 자산이다. 투기대상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농업에 종사하려는 사람에게 양도하면 양도세 혜택을 줘야 한다. 부모세대의 농업 노하우가 자녀세대에 가업으로 계승될 수 있도록 상속세도 감면해 줘야 한다."(윤석열 정부는 농어촌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영농상속공제 한도를 30억원으로 확대했다. 대신 피상속인의 요건은 강화했다. 농업 기반을 물려줄 부모의 영농 종사 기간을 2년 이상에서 '10년 이상'으로 늘렸다. )
K컬쳐의 영향으로 지난해 농식품 수출이 121억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1분기도 지난해보다 3.4% 증가한 22억7000만 달러를 달성했다. 라면,김밥,햇반 등 가공식품과 포도,딸기,김치 등 신선식품의 수출도 가파르다. 장태평 위원장은 "10년후에는 농식품 수출 1000억달러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식품 수출 1000억달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 식품산업은 아직 초등생 수준이다. CJ 등 일부 식품 대기업이 있지만, 대부분은 중소기업이다. 식품산업을 대학생·성인 수준이 되도록 기술과 경영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기업 규제를 풀어주고 검역이나 식품안전 등 통상 걸림돌을 정부가 나서 해결해 줘야 한다. 이를 위해 농식품수출촉진법 제정 등의 제도 정비와 농식품 수출기업에 세제·금융지원을 해야 한다. 연구개발 능력이 부족한 중소 식품기업에는 산학연 식품 클러스터를 조성해 아이디어 상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바이오파운드리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농어업위에서는 지역별 특성화된 식품산업맵을 구상중이다. "
▶미래 한국농업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네덜란드처럼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 2027년까지 시설농업을 30%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시설농으로 가야 한다. 농업에도 인공지능(AI) 시대가 올 것이다. AI를 활용한 스마트팜의 복합환경제어, 드론으로 농작물의 생육을 분석해 적당량의 비료를 뿌리고 수확량을 예측하는 정밀농업, 자율농기계를 통해 수확하는 농업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을 정부가 다 할 수 없기에 민간기업의 투자가 들어와야 한다."
장태평 위원장은 젊은이들을 육성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장 위원장은 "올해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청년 창업농업인들을 직접 만날 계획"이라며 "그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듣고 실효성 있게 농업정책에 반영할 것"라고 말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