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책금융과 민간펀드 등을 재원으로 10조원 이상의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팹리스, 제조시설 등 반도체 전 분야의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R&D)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HPSP에서 열린 업계 간담회에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반도체 생태계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진행된 현장 행보의 일환이다.
정부는 산업은행의 정책금융이나 재정·민간·정책금융의 공동 출자로 조성한 펀드 등을 통해 10조원 이상을 조달할 계획이다. 지원 대상은 제조시설 및 후공정 등 반도체 전 분야다. 최 부총리는 “간접적인 재정 지원 방식의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있다”며 “지원 계획을 구체화해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정을 통한 직접 지원이 아니라 국책은행이 제공하는 정책금융 등을 통한 대출이나 보증 방식이 유력하다는 뜻이다.
특히 최 부총리는 반도체 후공정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공정은 크게 전(前)공정과 후(後)공정으로 나뉜다. 전공정은 웨이퍼(반도체를 제작하는 기판)상 회로를 새기는 작업이고, 후공정은 웨이퍼에서 자른 칩을 쌓는 패키징 단계를 뜻한다.반도체 소부장 R&D 지원…세액공제 범위 확대도 검토
제조시설·후공정 등 全분야 지원…국책은행 대출·보증 방식 유력정부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해 반도체 업계에 3조6000억원가량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있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와 팹리스 분야 투자를 위해 지난해 조성된 반도체 생태계 펀드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정부와 함께 3000억원을 투입했다.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 및 용수·전력·도로 등 기반시설 구축에 1조원 이상의 재정도 쓰고 있다. 여기에 10조원 이상의 정책금융을 추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 들어 양호한 성장 흐름은 반도체가 상당 부분 견인했다”며 “향후 안정적인 성장 여부도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제대로 올라타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 부총리는 반도체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최근 세계 각국 정부는 반도체산업 주도권을 잡기 위해 보조금 지원 등 경쟁력 강화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그는 “기업이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세제를 통해 지원하고 취약한 부분을 중심으로 재정을 쓰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최 부총리는 “올해 종료 예정인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일몰 연장을 위해 국회와 적극 협의할 것”이라며 “기업·학계 등 민간과 협력해 국가전략기술 R&D(연구개발)·투자세액공제 범위 확대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통합투자세액공제는 기업의 사업용 설비와 시설 등에 대한 투자 금액의 일정 비율을 세액공제해주는 제도다. 국가전략기술 기준으로 공제율은 중소기업 25~35%, 중견·대기업 15~25% 수준이다. R&D 세액공제는 기업 연구개발비의 일정 비율을 세액공제해주는 제도다. 공제율은 중소기업 40~50%, 중견·대기업 30~40%다. 세액공제를 확대하려면 국회에서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야 한다.
최 부총리는 “첨단 패키징 등 대규모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조속히 마쳐 소부장 기술 개발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경민/이광식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