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이 라면 대장주(株)에 오르며 라면산업 역사를 다시 썼다. ‘불닭볶음면’이 미국 등 해외에서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잘 팔리자 주가가 치솟아 시가총액 기준으로 라면업계 부동의 1위였던 농심을 제쳤다. 지난 1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양식품 주가는 전날보다 1만5500원(5.0%) 오른 32만5500원에 마감했다. 이날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2조4520억원으로 농심(시총 2조4483억원)보다 크다.
◆라면株 1위 등극한국거래소가 개별종목 시가총액 데이터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5년 이후 농심은 라면업계에서 시가총액 1위를 지켰다. 1년 전만 해도 농심의 시가총액은 삼양식품의 세 배에 달했다. 1년 새 농심 주가는 제자리걸음한 반면, 삼양식품은 180%가량 급등해 역전을 허용했다. 이 같은 시장 평가에 농심 내부에서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양식품은 국내 최초 라면 회사로 한때 시장점유율이 70%에 육박했다. 그러나 1989년 발생한 ‘공업용 우지 사건’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5년8개월간 법정 싸움 끝에 1995년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10%대까지 떨어진 시장점유율을 다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삼양식품은 2010년대 들어 회생 기회를 잡았다. 2012년 4월 출시한 불닭볶음면이 2014~2015년 유튜브 등 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다.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라이브 방송에서 불닭볶음면을 먹으며 의도치 않게 홍보대사가 됐고, 외국인들이 SNS에서 ‘불닭 챌린지’를 퍼뜨렸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수출이 본격화한 2016년 이후 거의 매년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2016년 3593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조1929억원으로 7년 만에 3.3배 증가했다. 증권업계는 올해도 삼양식품이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수출 비중 70% 돌파 전망삼양식품이 2022년 2400억원을 투입해 경남 밀양에 새 공장을 준공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밀양 공장은 코로나19를 전후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K라면 수요에 대응하며 매출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 삼양식품의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68%에서 올해 72%로 높아질 전망이다. 정한솔 대신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 밀양 2공장이 완공되면 삼양식품의 실적이 더 큰 폭으로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삼양식품은 최대 수출처인 중국과 미국 외에 동남아시아, 중동 등으로 수출국을 넓히고 있다. 작년 5월 설립한 인도네시아 법인은 올해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연간 라면 소비량이 약 143억 개에 달하는 인도네시아는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라면 시장이다. 삼양식품은 중국에서 마라를 활용한 ‘마라 불닭볶음면’을, 북미에선 히스패닉계를 주 타깃으로 한 ‘하바네로라임 불닭볶음면’을 잇달아 출시하며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올 들어 해외 사업 성장 여부가 식품주 투자의 핵심 요인으로 떠오르면서 삼양식품과 경쟁사 오뚜기를 바라보는 시선도 엇갈리고 있다. 국내에 머물러 있는 식품업체들은 소비 침체에 제품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려는 정부 압박까지 더해져 수익성을 높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