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가 농산물 물가를 끌어 올리는 '기후플레이션'이 본격화됐다. 폭염과 가뭄으로 올리브 수확량이 반토막 나면서 올 1분기 국제 올리브유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하에 가격 인상을 자제해오던 국내 식품사들도 원가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최근 올리브유 가격을 30% 넘게 올렸다. ○CJ제당·샘표 올리브유 30%대 인상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부터 대형마트 3사에서 판매되는 CJ제일제당 올리브유 가격이 33.8% 인상됐다. '백설 압착올리브유' 900㎖는 1만9800원에서 2만6500원으로, 500㎖ 제품은 1만2100원에서 1만6200원으로 올랐다. 같은 시기 샘표도 올리브유 제품 가격을 30% 이상 상향 조정했다.
다른 식품사들의 올리브유 가격도 줄줄이 인상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조대림과 동원F&B도 비슷한 시기에 대형마트에 가격 인상 요청 공문을 보냈다”며 “타사 제품의 인상폭도 (CJ제일제당과)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커머스에서는 두 달 만에 올리브유가 2배 뛴 사례도 포착됐다. 쿠팡 상품 가격 변동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앱 폴센트에 따르면 쿠팡에서 판매하는 '올리타리아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1L'는 3월 말 2만3900원에서 지난 10일 기준 4만7000원으로 96.6% 올랐다.
정부가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서 식품사들이 '두 자릿수' 가격 인상을 단행한 건 원가 부담이 임계치에 달했기 때문이다. IMF에 따르면 올 1분기 국제 올리브유 가격은 t당 1만88달러로 분기 기준 사상 처음으로 1만달러 선을 돌파했다. 작년 1분기(t당 5926달러) 가격의 2배 가까이 된다. 2020년 1분기 가격이 t당 2740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4년 새 가격이 3.6배가 된 셈이다.
국제 올리브유 가격이 폭등한 건 이상 기후 탓이다. 최근 2년간 올리브유 최대 생산국인 스페인에서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면서 올리브유 생산량이 반토막 났다. 스페인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유는 연간 130만~150만t 정도인데, 2022~2023년 수확기에 생산한 양은 66만t에 불과하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주요 올리브 생산국들도 같은 이유로 작황 부진을 겪고 있다.
치킨업계 등 외식업계의 타격도 크다. 100% 스페인산 올리브유만 사용해오던 치킨 프랜차이즈 제너시스 BBQ는 원가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10월부터 튀김용 기름을 올리브유와 해바라기유를 절반씩 섞은 것으로 교체했다. 샐러드와 피자, 파스타 등에 올리브유를 사용하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도 부담이 커진 건 마찬가지다. 외신에서도 올리브유 가격이 크게 올라 불가피하게 메뉴 가격을 인상하는 뉴욕 식당들의 사례들이 소개된 바 있다. ◆코코아·로부스터도 가격 올라
기후플레이션은 비단 올리브유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도 지난해 생산량이 지난해 급감해 가격이 크게 올랐다. 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의 가뭄이 극심했던 탓이다. 지난 10일 기준 코코아 선물 가격은 t당 8891달러다. 작년 5월에는 t당 2900달러대였는데, 1년 만에 3배가 됐다. 지난달에는 t당 1만달러를 넘기도 했다. 이에 롯데웰푸드는 다음달부터 가나초콜릿과 빼빼로 등 17종 제품의 편의점 판매가격을 평균 12% 인상하기로 했다.
인스턴트 커피에 주로 쓰이는 로부스타 원두도 1년새 30% 넘게 급등했다. 최근 런던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로부스타 선물(7월물) 가격은 t당 3443달러로, 작년 5월 평균 가격(t당 2622달러)보다 31.3% 높다. 지난달에는 t당 4100~4300달러 수준에 거래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으로 로부스타의 주산지인 베트남 중부 고원지방이 가뭄을 겪으면서 생산량이 줄었다. 베트남 농업부는 가뭄 때문에 2023~2024년 수확기의 커피 생산량이 20%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농산물도 비슷한 상황이다. 올초 '다이아사과'라는 말이 나올 만큼 사과 값이 폭등했던 것도 냉해로 사과 생산량이 30%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여름철 과일인 수박의 생육도 부진하다. 지난 겨울 마치 여름처럼 비가 자주 내리면서 일조량이 줄어든 탓이다.
최근 전남·제주·경남 등 전국 마늘 주산지에서도 마늘이 12개쪽 이상으로 분화해 상품성이 떨어지는 '벌마늘' 현상이 발생했다. 평년 대비 겨울 기온이 높고, 2~3월 일조량이 부족했던 게 원인으로 꼽힌다. 농업중앙회는 피해복구를 위해 인력 지원과 손해보험 보상, 재해 무이지 자금 지원 등을 시행할 계획이다.
양지윤/이선아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