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장 변질된 '홀덤펍' 결국 철퇴 맞았다

입력 2024-05-10 18:24
수정 2024-05-11 01:19

정부가 홀덤펍에서 우승 상품으로 지급하던 ‘시드권’(상위 대회 참가권)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시드권을 현금으로 바꿔주는 방식으로 상금이 수억~수십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대회가 잇따라 열리자 정부가 생태계 전반에 규제 칼을 꺼내 든 것이다. 이에 따라 전국에 있는 홀덤펍 업체 수천 개는 당장 영업 방식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매주 상금 수억원을 내걸고 홀덤펍 대회를 개최하던 곳은 예정된 대회를 잠정 중단하는 등 파장이 일고 있다.

▶본지 1월 15일자 A27면 참조 ○시드권 현금 교환된다면 “무조건 처벌”문화체육관광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경찰청 등이 참여한 ‘범정부 홀덤 태스크포스(TF)’는 10일 ‘카지노업 유사 행위 금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홀덤 게임에서 얻은 침과 시드권 등을 현금으로 교환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라고 밝혔다.

현금 거래가 있는 대회를 주관하면 개정 관광진흥법에 따라 관련자를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기로 했다.

TF 관계자는 “외부 후원을 받더라도 시드권이 참가비 또는 운영비로 쓰이면 모두 처벌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텍사스 홀덤’으로 불리는 홀덤은 포커를 변형한 ‘플레잉 카드(트럼프)’ 게임으로, 4~5년 전 국내에 소개되면서 널리 퍼졌다. 전국에는 이 게임을 즐기며 주류를 제공하는 홀덤펍이 2000여 개나 된다. 그동안 홀덤펍에서는 자체 대회 입상 시 장당 액면가 10만원짜리 시드권 한두 장을 지급해왔다. 시드권을 활용하면 상금 1000만원대인 중간 규모 대회에 참가할 수 있고, 더 많은 시드권을 가지면 총상금이 ‘억원대’인 메이저 대회에 나갈 수 있다.

홀덤업계는 그동안 “시드권은 현금 가치가 없는 참가권”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카카오톡 채팅방, 중고거래 플랫폼 등에서 거래되고 대회장에서는 현금 교환도 가능했다. 대규모 대회가 열리면 플레이어 상당수가 현장에서 현금을 지급하거나 시드권을 구매해 대회에 참여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번 가이드라인 발표로 환금성이 있는 홀덤펍과 대회장은 모두 불법이고, 해당 대회 참여자도 도박죄로 처벌받을 수 있게 됐다. ○1위 홀덤 대회사도 시드권 발행 중단범정부 홀덤 TF는 금전 거래가 없는 단순 홀덤 게임이 합법이라고 밝혔지만, 게임을 위해 발행된 시드권, 칩, 매장 이용권 등이 발행 주체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중에라도 현금으로 교환되면 불법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시드권 생태계’가 폐기 절차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소규모 홀덤펍과 대형 대회 운영사는 영업 방식을 바꿔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1위 홀덤 대회사 APL은 최근 경찰 단속이 강화되면서 아예 시드권 발행을 중지했다. 앞으로 홀덤펍은 보드게임방, 당구장처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홀덤펍 이용자는 사실 돈을 따러 온 것인데, 시드권과 매장 이용권 등이 불법이 되면 방문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홀덤펍 이용자가 다른 불법 도박판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미 일부 홀덤펍 이용자는 보드게임방 등을 빌려 현금을 걸고 ‘자체 하우스 게임’을 하고 있다.

반면 정철승 더펌 변호사는 “홀덤 게임은 해외에서 마인드 스포츠로 인정받는 추세”라며 “국내에서도 가이드라인을 계기로 홀덤펍이 합법화·정상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