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 넘어도 못 참아" 불만 폭발…심상치 않은 판교 [김대영의 노무스쿨]

입력 2024-05-13 10:17
수정 2024-05-13 10:58
"회사가 성장하면서 수평적 조직 문화는 수직 관료적으로 변했다. IT 산업의 핵심인 활발한 소통 문화는 사라졌다. 회사의 엄청난 성장에도 복지는 뒷걸음질쳤다."

2018년 4월 이 같은 창립선언문을 내고 설립된 네이버 노조는 노조와는 거리가 멀었던 정보기술(IT)·플랫폼 업계에 노조 '신호탄'이 됐다. 같은해 10월 회사와의 소통 문제를 거론하며 카카오에도 노조가 설립되는 등 이후 IT 업계 주요 기업들에 연달아 노조 깃발이 올랐다. 억대 연봉에도 '복지·보상·소통' 불만 고조네카오를 비롯한 IT 기업들은 몇 년 사이 덩치를 빠르게 불렸다. 스타트업에서 시작했지만 급성장해 종전과 같은 소통을 하기엔 조직이 너무 커진 것이다. 네이버는 2013년만 해도 전체 직원 수가 1592명이었는데, 노조가 설립된 2018년엔 3585명으로 5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카카오도 같은 기간 1539명에서 2705명으로 불어났다.

예상하지 못한 노조 설립 붐이란 시각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도 높고 근로환경도 나은 것으로 알려졌던 IT 업계에서 복지와 보상 문제를 내건 노조들이 잇따라 설립됐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지난해 1인당 평균 급여는 모두 1억원을 웃돈다. 비교적 최근 노조가 설립된 게임업계 3N(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도 7500만~1억원대에 이른다.

IT 업계에 노조 바람을 불러일으킨 원인 중 하나는 불안정한 고용환경이었다. 엔씨 노조는 지난해 4월 "고용된 직원이지만 마치 프로젝트에 고용된 '한시적 정규직' 같다"는 설립선언문을 내고 공식 출범했다. 게임업계에선 특정 프로젝트가 중단되면 이를 담당했던 직원들이 사실상 대기발령 상태에 놓이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었다는 것이다.

넥슨 노조는 2019년 3월 첫 집회를 주최하면서 이러한 관행을 정조준했다. 집회에는 넥슨 직원 600여명이 참여했다. 프로젝트 중단 후 대기발령 상태에서 다른 업무로 전환배치되지 않는 경우 사실상 '권고사직'으로 받아들이는 관행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노조 설립 이후 '포괄임금제 폐지' 등 성과IT 노조들은 설립 이후 적잖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단체교섭 등을 활용해 소통 창구를 확대한 데 이어 임금·단체협약을 계기로 근로환경을 바꿨다.

IT 노조들이 고질적 병폐로 꼽았던 '포괄임금제'가 폐지된 것이 대표적. IT 노조들은 그동안 초과 근로를 하더라도 포괄임금제에 가로막혀 일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 스마일게이트 등에선 포괄임금제가 폐지됐다. 당시 노조가 없던 엔씨소프트와 넷마블도 덩달아 포괄임금제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올 1월 설립된 야놀자·인터파크 노조 역시 '포괄임금제 폐지'를 내걸고 둥지를 틀었다.

IT 노조들은 모두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 소속 지회 형태로 조직돼 최근 화력을 모으고 있다.

이들 노조 중 7곳(네이버·넥슨·스마일게이트·엔씨소프트·웹젠·카카오·한글과컴퓨터)은 계열사 총 32곳과 임금 교섭을 하는 과정에서 'IT 임협 연대'를 꾸려 함께 대응하기로 했다. IT 임협 연대는 업계 내 공정한 성과 배분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일부 네이버 계열사들은 '성과급 등급별 비중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기존 노조들 성과 내자 신생 노조 잇따라기존 IT 노조들이 조금씩 성과를 내자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기업들 사이에서 신생 노조가 연달아 설립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NHN 노조가 설립된 데 이어 올 1월 야놀자·인터파크, 이달 7일엔 넷마블에서도 노조 깃발이 올랐다.

이들 노조는 복지 축소, 포괄임금제, 인력 감축 등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IT 노조들은 최근 단행되는 인력 구조조정에 공동 대응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넷마블 노조는 2년 사이 자회사 폐업과 권고사직을 통해 직원 수백명이 내몰렸다고 주장하면서 인력 감축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엔씨 또한 박병무 공동대표가 지난 10일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이달 중 권고사직을 단행한다고 밝힌 만큼 노조 대응이 주목된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