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검찰이 전기자동차(EV) 업체 테슬라를 사기 혐의로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가 자사 차량의 주행 보조 기능을 완전자율주행(FSD) 시스템인 것처럼 소비자와 투자자를 속였다는 게 수사의 핵심이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추진하는 사업 계획 실현이 대부분 그의 약속보다 늦어지는 ‘일론 타임(Elon Time)’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사기 혐의 받는 자율주행 선전
로이터통신은 8일(현지시간) 여러 소식통을 인용해 “테슬라가 주행 보조 기능 ‘오토파일럿’과 ‘풀셀프드라이빙’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완전자율주행 시스템인 것처럼 소비자와 투자자를 속였는지 연방검찰이 수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그동안 미국 전역에서 오토파일럿 기능이 장착된 테슬라 차량이 일으킨 사고를 개별 조사해왔다. 로이터통신은 연방검찰과 별개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테슬라의 오토파일럿과 풀셀프드라이빙은 운전자의 주행·제동·차선 변경을 도와주는 주행 보조 기능일 뿐 완전 무인 주행 시스템이 아니다. 사법 당국이 문제 삼은 건 2016년 “테슬라 차는 도심 도로를 지나 고속도로까지 스스로 주행한 뒤 주차 공간을 찾는다”는 머스크 CEO의 발언이다.
또 테슬라 웹사이트에는 “운전석에 있는 사람은 단지 법적 이유로 있는 것일 뿐”이라며 “운전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차가 알아서 운전한다”고 말하는 영상이 게재돼 있다.
테슬라는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2012년부터 판매한 전 모델 차량 200만 대를 리콜했다. 오토파일럿 기능이 장착된 테슬라 차량의 오작동 사건이 1000여 건을 넘긴 데 따른 조치였다. 당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2021년부터 2년간 조사한 뒤 “조사 결과 차량에 운전자 주의를 환기하는 장치가 불충분해 주행 보조 기능이 오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테슬라는 지난해 2월엔 풀셀프드라이빙 소프트웨어 결함을 이유로 36만여 대를 리콜했다. ○기소 땐 법적 공방 치열할 듯검찰이 테슬라를 실제 기소할지는 미지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검찰은 현재 테슬라에 대해 ‘통신망 사기’와 ‘증권 사기’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 통신망 사기는 전화 이메일 SNS 등을 통해 소비자를 오도했을 때, 증권 사기는 잘못된 정보와 모호한 정보로 투자자를 속였을 때 적용된다. 검찰은 2022년 10월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테슬라를 기소하기 위해선 회사가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피해가 갈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중대한 허위 진술을 했는지 입증해야 한다.
기소가 현실화되면 치열한 법리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2008년 기업이 자사에 낙관적 전망을 밝힌 것만으로 투자자를 의도적으로 오도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실제 테슬라 측 변호사들은 그동안 제기돼온 오토파일럿 관련 소송에서 “장기적 열망을 담은 목표를 실현하지 못한 것만으로는 사기가 아니다”고 주장해왔다.
머스크 CEO는 2015년 “완전자율주행차를 2년 안에 완성할 수 있다”, 2017년 “5년 내 자율주행차가 도입된다”는 등 자율주행차와 관련해 장밋빛 발언을 이어왔지만 이 전망이 현실화되지 않아 업계에선 이를 비꼬는 ‘일론 타임’이란 용어까지 생겼다.
테슬라는 지난해 오토파일럿 관련 소송에서 잇달아 승소했다.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카운티법원에서 열린 오토파일럿 차량 사망 사고 관련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운전자 부주의 등을 들어 9 대 3 의견으로 테슬라에 배상 책임이 없다고 평결했다. 테슬라는 작년 4월 오토파일럿 오작동으로 발생한 사고 피해를 주장하는 첫 민사 소송에서도 이겼다.
혹시라도 사기 혐의가 확정되면 테슬라는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는 오는 8월 풀셀프드라이빙을 적용한 로보택시 공개를 앞두고 있는 등 자율주행 시스템 고도화에 총력을 쏟고 있다. 검찰 수사 보도에 이날 테슬라는 전 거래일 대비 1.74% 하락한 174.72달러로 마감했다. 테슬라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30% 가까이 빠졌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