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영화를 예약한 ‘범죄도시4’에 대해 영화계 중심으로 ‘몰빵 상영’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멀티플렉스 업체들은 “인위적 몰아주기는 아니다. 대중적 관심도가 높은 작품 위주로 편성하는데 (범죄도시4를 제외하면) 걸만한 작품이 안 보이는 실정”이라고 해명했다. 최근 개봉된 영화 상황과 멀티플렉스 산업 구조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8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범죄도시4’는 전날(7일)까지 관객 871만8696명을 모았다. 지난달 24일 개봉한 뒤 2주 만에 거둔 성적으로 이 추세라면 1000만 돌파가 무난할 전망이다.
흥행 성적과 별개로 영화계에선 ‘범죄도시4’를 콕 집어 문제 제기했다. 최근 열린 ‘한국 영화 생태계 복원을 위한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는 “극장들이 5~10분 단위로 ‘범죄도시4’ 상영시간을 배열하면서 영화계를 망가뜨리고 있다.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라고 주장한 바 있다.
특정 영화에 스크린이 지나치게 편중된 것은 문제며 관객 선택권과 영화의 다양성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론이지만 수익을 내야 하는 멀티플렉스 입장은 다르다. 대중적으로 많이 볼만한 영화를 우선순위로 상영관을 배정하는데, 정작 ‘범죄도시4’를 제외하면 마땅한 작품이 없다는 하소연이다.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 관계자는 “영화 개봉 시기를 결정하는 배급사들이 흥행이 예상되는 ‘범죄도시’ 시리즈 개봉을 피한 경향도 있다”며 “최근 영화 라인업이 이렇다 보니 시기적으로 어쩔 수 없이 ‘범죄도시4’가 많이 편성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공개된 ‘좌석 점유율’과 ‘좌석 판매율’을 비교해보면 멀티플렉스 측 해명에 힘이 실린다. 좌석 점유율은 영화관이 배정하는 상영관 비율, 좌석 판매율은 그 영화에 실제 관객이 얼마나 들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범죄도시4’는 개봉 후 첫 한 주간(4월24~30일) 좌석 점유율이 줄곧 85% 내외를 찍었다. 전체 상영관의 십중팔구가 틀었다는 얘기다. 이 비율은 2주차(5월1~7일)에 접어들며 70%대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범죄도시4’는 좌석 판매율 역시 높았다. 개봉 후 첫 주말엔 40%대에 달했다. 상영관도 많았지만 그만큼 관객 또한 많이 찼다. 2주차에도 어린이날(5월5일) 연휴에 관람이 많았던 애니메이션 ‘쿵푸팬더4’를 제외한 대다수 영화보다 좌석 판매율이 높았다.
스크린 독과점 논리가 힘을 받으려면, 여타 영화들은 좌석 판매율(수요)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도시4’ 몰빵 때문에 좌석 점유율(공급)이 낮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관객이 많이 몰리는 상영시간에 ‘범죄도시4’가 집중 배정되는 등의 요인도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를 감안해도 ‘스턴트맨’·‘챌린저스’ 등의 상영작과 격차가 큰 편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시기 대규모 적자를 감수했던 멀티플렉스들로선 만회가 시급하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관객이 많이 들지 않는 지방 영화관은 문을 닫는 비상 상황이라서다. CJ CGV는 지난 2월 인천 논현점을, 롯데컬처웍스는 최근 대전 둔산점을 영업 종료한다며 임대차 계약 해지 요구 공문을 보냈다.
한 영화관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 발생한 영업 손실이 굉장히 컸다. 당시 영화관 셧다운(운영 중단)에 따른 정책적 지원이나 보전을 받지 못해 지금도 재정난을 겪고 있다”면서 “멀티플렉스가 처한 현실이 어려운 데다 배급사들의 영화 개봉 시기 조정 같은 상황이 맞물려 일시적으로 몰빵 논란이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화계 전반이 어려운 가운데 영화관들까지 재무구조가 악화한 탓에 다양성 영화 안배나 예술영화 전용관 등의 비중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은 실정. 한국 영화 회복이 급선무고 ‘범죄도시4’를 계기로 불거진 스크린 편중 문제에 대한 영화관들과의 협의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CJ CGV 관계자는 “영화계 우려는 뼈아프게 받아들인다. 단 관객들이 많이 보는 작품 위주로 편성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 특정 영화를 밀어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인데 다른 영화들이 ‘범죄도시4’를 피해 개봉하려다 보니 상영관 배정이 몰린 면도 있다. 관심도를 반영해 편성하므로 곧 다양한 작품이 나오면 자연스레 논란이 해소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