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금 금리가 한국은행 기준금리(연 3.5%)에 불과해 해지했습니다.” ‘예테크(예금과 재테크의 합성어)족’과 이자 생활자가 정기예금에서 이탈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지연 전망에도 불구하고 예금금리가 오히려 하락하면서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요구불예금에 몰리면서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저원가성 예금은 올해 1분기에만 31조원 넘게 급증했다. 자금 조달 비용이 줄면서 주요 은행의 2분기 실적은 한층 개선될 전망이다. ○5대 은행 정기예금 13조원 이탈
8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은행 19곳의 1년 만기 정기예금 36개 중 9개는 우대금리 조건을 충족해도 최고 금리가 연 2.80~3.45%에 그쳤다. 정기예금 4개 중 한 개꼴로 예금금리가 기준금리(연 3.5%)를 밑돈다. 신한은행 ‘쏠편한 정기예금’과 우리은행 ‘원 플러스 예금’ 최고 금리는 연 3.55%로 기준금리를 간신히 넘었다. 국민은행 ‘KB 스타 정기예금’과 하나은행 ‘하나의 정기예금’ 최고 금리는 연 3.50%로 기준금리와 같았다. 카카오뱅크 정기예금은 연 3.30%에 그쳤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2022년 레고랜드발(發) 자금경색 사태 때 판매한 고금리 예금 만기가 돌아오면서 연 4%대 은행 예금이 적지 않았다. 올 들어선 딴판이다. 고금리 정기예금은 자취를 감췄다. 금리 하락에 지친 예금자들은 정기예금에서 돈을 빼고 있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정기예금 잔액은 872조8820억원으로 올 2월(886조7369억원)에 비해 13조3681억원이나 줄었다.
주식과 암호화폐, 부동산 등 자산시장마저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면서 정기예금을 이탈한 자금은 요구불예금에 모이고 있다. 5대 은행이 집계한 올 1분기 말 요구불예금과 기관·공공예금 등을 포함한 저원가성 예금은 656조9745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4분기(625조6141억원)보다 31조3604억원 증가했다. 농협은행은 3개월 새 10%(11조3781억원) 늘었다. 신한(6.7%·8조5123억원), 국민(4.5%·6조6000억원), 하나(4.2%·4조8160억원), 우리(0.04%·540억원)도 저원가성 예금을 불렸다. ○채권금리 상승 미반영 지적도저원가성 예금은 언제든지 꺼낼 수 있어 금리가 연 0.1%에 불과하다. 은행에는 ‘공짜 예금’인 셈이다. 싼 자금을 깔고 앉은 5대 은행은 예금 유치에 소극적이다. 한 시중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대출 수요보다 예수금이 풍부해 정기예금을 통한 자금 조달은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은 만큼 섣불리 1년 만기 예금금리를 올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정기예금에 비해 금리가 저렴한 요구불예금을 두둑이 확보한 은행들의 이자이익은 증가하고 있다. 5대 은행의 올 1분기 이자이익은 10조5639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10조970억원)보다 4.6%(4669억원) 늘었다. 저원가로 조달한 예금이 증가하면서 은행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도 개선됐다.
저원가성 예금이 153조1000억원으로 가장 많은 국민은행의 올 1분기 NIM은 1.87%로 전 분기보다 0.04%포인트 상승했다. 1분기 저원가성 예금 증가 폭(10%)이 가장 가파른 농협은행도 작년 4분기에 비해 0.04%포인트 오른 1.87%를 기록했다. 신한(1.62%→1.64%) 하나(1.52%→1.55%) 우리(1.47%→1.50%)은행도 작년 4분기보다 NIM이 일제히 상승했다.
은행들이 채권금리 등 시장금리가 오르고 있는 점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일 1년 만기 은행채(AAA등급) 평균 금리는 연 3.683%로 지난달 5일의 연 3.541%보다 상승했다. 정기예금에 은행채보다 낮은 이자를 주고 있다는 얘기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