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로 넘어오는 사건 중 상당수는 기본적인 협상·화해 기술을 지닌 중재자가 있다면 충분히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등 사회적 갈등이 급격히 늘면서 이런 분쟁 해결 기술이 여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지만, 한국 근로자들은 그런 경험을 쌓을 기회가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사진)은 지난 5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갈등 해결 전문가를 대거 육성하는 ‘대안적 분쟁 해결(ADR) 전문가 양성 과정’을 개설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부임 직후인 지난해 초부터 한국형 ADR 제도 도입에 힘을 쏟아왔다. 대안적 분쟁 해결이란 소송 등 사법 절차로 가기 전에 전문가 지원을 받아 당사자들이 갈등을 자주적으로 해결하는 화해·조정·중재 기법을 말한다. 김 위원장은 중노위 부임 전 노동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하며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의 심각성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갈등 해소를 위해 투입되는 각종 ‘사회적 낭비’를 줄여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지난해 12월 국무조정실이 실시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 분석’에 따르면 사회 갈등으로 소요된 비용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총 2326조원에 달했다.
그는 부임 이후 지난해부터는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에도 ADR식 기법을 접목했다. 그 결과, 지난해 전년 대비 조정 성립률과 부당해고 등 화해율이 5% 가까이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ADR 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1999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의 차별행위 사건 조정 해결률은 72.11%에 달한다.
김 위원장은 “한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임금·근로 조건이 크게 개선됐지만, 오히려 직장 만족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 등 사내 갈등이 발생했을 때 관리자나 상급자의 중재와 의사소통 능력 부족으로 문제가 방치되면 조직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이 도입해 7일부터 교육이 시작된 ‘ADR 전문가 양성 과정’은 4단계 레벨에 따라 교육이 이뤄진다. 이날 처음 교육이 실시된 ‘레벨1’은 자격 제한 없이 모든 사람이 신청할 수 있으며 화해·조정·중재 등 기초 이론을 가르친다. 레벨2 심화 과정에서는 고충 해결과 의사소통 방법에 대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한다.
내년부터 운영되는 고급 과정인 3, 4레벨에서는 ‘ADR 관련 연구·컨설팅’ 능력과 ‘지도자 역량 개발’ 관련 교육을 받게 된다. 모든 레벨을 이수하면 중노위에서 인증서를 발급해 ‘ADR 능력’을 인증해줄 예정이다. 정부 기관에서 협상·중재 관련 ‘능력 인증’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전 접수에서 연간 1000명 정도가 양성 과정에 신청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2400명(7일 기준)이 넘는 신청자가 몰렸다. 김 위원장은 “남녀 간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가 여성의 ‘협상 능력’이나 ‘소셜 스킬’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해외 연구 결과가 있다”며 “ADR 전문가 양성 과정을 수료하면 여성 직장인이나 취업 준비를 하는 학생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중요한 인증 자격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