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 '최후의 보루' 친다…민간인 소개·대피령

입력 2024-05-06 16:02
수정 2024-05-06 17:32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이 몰린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지역에 민간인 대피·소개령을 내렸다.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라파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사회에선 인도적 참사를 우려해 이스라엘의 공격을 강력히 반대해왔다. 중동 지역의 긴장감이 올라가며 내림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도 반등했다. 그동안 진행해온 휴전 협상에선 하마스가 지상군 전면 철수를 주장한 반면, 이스라엘은 공격 일시 중단의 대가로 인질 석방을 요구한 탓에 접점을 찾지 못했다. 대규모 공습, 지상군 진입 초읽기6일 일간 하레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라디오 방송과 SNS 엑스(X) 등을 통해 라파 주민들에게 "가자지구 해안과 후방지역에 '인도주의 구역'을 확대한다"며 대피를 촉구했다. 아비하이 아드라이 이스라엘군 아랍어 대변인은 "인도주의 구역엔 야전 병원과 텐트촌, 식량과 물, 의약품 등이 구비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항공기로 이 같은 전단지를 살포했고, 현장에서 활동 중인 구호 단체에도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미국에 이미 라파 공격 계획을 통보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전날 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장관과 전화 통화에서 라파 공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지상전이 시작될 경우 대규모 인명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라파에는 140만명가량의 피란민이 머물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만류해왔다. 이날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두 명의 이스라엘 관리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로 보내려던 미국산 탄약의 선적을 보류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인질 구출, 안보 위협 해소 등을 위해 라파 공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왔다. 라파에는 지금도 무장 대원 수 천명 규모의 하마스 4개 대대가 남아 있다는 게 이스라엘군의 주장이다. 전날엔 하마스가 라파 인근에서 이스라엘 국경검문소에 로켓을 발사해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어진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남부에선 최소 12명이 사망했다.

평행선 달린 휴전 협상이스라엘이 공격에 나선 것은 하마스와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마스는 지난 주말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국, 이집트, 카이로의 중재로 진행된 협상에서 이스라엘에 지상군 즉각 철수와 종전을 요구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인질을 33명을 석방하면 공격을 일시 중단하겠다는 데서 물러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진 못하더라도 마지막 남은 라파를 공격해 적어도 팔레스타인 영토에선 하마스를 완전히 축출한다는 방침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추모식 연설에서 "홀로코스트 당시 세계 지도자들이 방관했고, 어떤 나라도 우리를 돕지 않았다"며 "이스라엘은 승리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며 홀로 서야 한다면 홀로 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안갯속 중동정세, 국제유가 상승 우려참사가 벌어지면 국제적인 비난이 잇따를 전망이다.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1200여명이 사망한 뒤 전쟁을 시작한 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3만4500명이 사망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을 집단학살 사건으로 제소하기도 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더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이스라엘은 전날 각료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아랍권 언론사인 알자지라 사무소 폐쇄 및 취재 보도 활동 금지했다. 이스라엘 경찰은 곧바로 알자지라가 본부로 사용하던 호텔을 급습해 카메라 등 장비를 압류했다. 유엔 인권사무국은 성명을 통해 유감을 나타내고, 금지조치 철회를 촉구했다.

중동지역 정세가 불안정해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에 협력하는 이집트와 요르단 등의 상황을 설명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 대중의 적대감과 불만이 자신들의 지도자와 정권으로 향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물론 온건했던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도 ‘이스라엘 을 가만둬선 안 된다’는 여론이 끓어오를 경우 정부 차원의 반이스라엘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은 이날 오후 78.77달러로 전날보다 소폭(0.84%) 상승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