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 대란 피한 건 묵묵히 환자 곁 지키는 의사들 덕분

입력 2024-05-05 17:30
수정 2024-05-06 07:22
지난 2월 말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시작된 의사들의 파업이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전공의 10명 중 9명 이상이 현장을 떠나 복귀하지 않고 있으며, 과로에 시달리는 의대 교수들도 주 1회 휴진에 들어갔다.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가 의대 증원을 확정하면 1주일간 집단 휴진하겠다고 예고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집단 휴진에 동네 병원을 운영하는 개원의들의 동참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료 현장이 ‘의사 공백’ 수준에 그치고 ‘대란’으로 번지지 않은 것은 묵묵히 환자 곁을 지키는 의사가 적잖기 때문이다. 이도상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휴진이 권고됐던 지난 3일에도 출근해 대장암 환자 등의 진료를 봤다. 교수협의회가 휴진을 결정했더라도 환자가 먼저이니 환자 곁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병원의 다른 젊은 교수는 한 달에 당직을 15일 이상 서 가며 환자를 돌보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국립대병원의 한 교수도 환자에 대한 사명감과 인류에 대한 봉사정신으로 병원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전공의 빈자리로 인해 체력적으로 지치고 힘들지만 환자를 위해 의사와 간호사들이 합심해 열심히 진료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상남도의 한 종합병원에선 교수 전원이 석 달째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현장을 지키고 있다. 서울대 의대·병원 비대위가 최근 소속 병원 교수 46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96.5%가 환자 곁을 지키고 싶다고 답했다.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의 최대 고충은 따돌림과 눈치라고 한다. 언론 취재에 응한 다수가 익명을 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배신자’ 낙인이 찍힐까 두렵다고 했다. 배경엔 국민의 바람과 달리 의대 증원 백지화만을 외치는 의사단체들의 집단주의 노선과 강경파들의 ‘좌표 찍기’가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묵묵히 자기 소임을 다하는 의사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그들이라고 정부의 일방통행에 불만과 원망이 없었을까. 싸울 땐 싸우더라도 환자 곁을 떠나지는 말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