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 비바람 뚫고 대역전극…시즌 첫 2승 '신고'

입력 2024-05-05 16:08
수정 2024-05-06 00:09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상황에서도 박지영(28)의 샷감은 불을 뿜었다. 10번홀(파5) 페어웨이에서 125야드 남기고 친 세 번째 샷이 핀 2m 안쪽에 붙었다. 신중하게 라인을 살핀 뒤 스트로크를 한 공은 정확히 홀로 빨려 들어갔다. 이 홀에서 1.5m 파퍼트를 놓친 이제영(23)을 끌어내리고 단독 선두로 올라선 박지영은 11번홀(파4)까지 4개 홀 연속 버디 쇼를 펼치며 우승을 향해 질주했다.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3승을 쓸어 담았음에도 상금랭킹 3위, 대상포인트 7위에 그친 박지영이 올해를 자신의 해로 만들 준비를 마쳤다. 박지영은 5일 경북 구미의 골프존 카운티 선산(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교촌 1991 레이디스 오픈 최종 3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솎아내 6언더파 66타를 쳤다. 최종합계 13언더파 203타를 적어낸 박지영은 공동 2위 그룹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짜릿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2주 전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둔 박지영은 이번 대회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올 시즌 첫 다승자로 등극했다. 통산 9승째다. 우승 상금 1억4400만원을 챙긴 박지영은 시즌 상금랭킹 1위(4억2488만원), 대상 1위(198점)로 올라섰다. 송곳 샷으로 그린 적중률 ‘77.7%’박지영은 이날 선두 이제영에게 3타 뒤진 공동 2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섰다. 그는 빗속에서도 날카로운 아이언샷을 뽐내며 이제영을 위협했다. “비가 오는 날 원래 잘 못 치는데 오늘은 굉장히 감이 좋았다”는 박지영의 이날 그린 적중률은 77.7%(14/18)였다. 특히 4연속 버디를 몰아친 11번홀까지 그린 적중률은 100%였다.

3번홀(파4)에서 약 3.5m 버디퍼트를 떨어뜨린 박지영은 2번홀(파3)에서 먼저 버디를 잡은 이제영을 무섭게 추격했다. 송곳 아이언샷이 빛을 발했다. 8번홀(파3)에서 두 번째 샷을 핀 1m에 붙여 버디를 잡은 그는 9번홀(파5)에서도 세 번째 샷을 핀과 약 1m 거리에 붙인 뒤 버디를 낚아 이제영을 1타 차로 바짝 따라붙었다.

승부는 후반 10번홀에서 갈렸다. 흐름을 탄 박지영이 먼저 버디를 솎아낸 가운데 이제영이 짧은 거리 파퍼트를 놓치면서 순위가 뒤집혔다. 11번홀까지 4연속 버디를 몰아친 박지영은 13번홀(파3)에서 4m의 까다로운 버디퍼트를 성공시킨 뒤 우승을 예감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박지영은 “사실 우승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4연속 버디가 나오고 감도 좋아서 역전 우승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악몽 재현한 이제영, 또 첫 승 놓쳐2020년 KLPGA투어에 데뷔한 이제영은 5년 차인 지금까지 첫 승이 없다.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지난해 8월 열린 맥콜·모나 용평 오픈에서도 마지막 날까지 우승 경쟁을 펼친 끝에 준우승을 기록했다. 지난 3월 태국에서 열린 블루캐니언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도 3위에 오르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가장 아쉬웠던 기억은 2년 전이다.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친 그는 2022년 7월 호반 서울신문 위민스 클래식에서 최종 3라운드를 2타 차 단독 선두로 나섰다. 이틀 연속 선두 자리를 지켰기에 와이어투와이어 우승까지 기대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생애 첫 챔피언조에서 전반까지 2타를 줄이며 선전했지만, 후반에만 3타를 잃고 무너져 공동 4위로 대회를 마쳤다. 지난해 8월 하이원리조트 여자 오픈에서도 1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4라운드를 맞았지만 무려 4타를 잃은 뒤 공동 12위로 밀렸다.

이제영은 이번 대회에서도 최종 라운드의 악몽이 재현됐다. 3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섰지만 이날 버디 2개와 보기 1개로 1타밖에 줄이지 못해 공동 2위(11언더파)로 내려왔다. 이날만 5타를 줄인 아마추어 국가대표 김민솔(18)도 공동 2위에 올랐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