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예방법 배우러 왔어요"…노인 금융학교 '문전성시'

입력 2024-05-03 18:10
수정 2024-05-13 16:30
“안녕하세요 금융감독원 수사관입니다. OOO 씨 가족 명의로 대포통장이 만들어진 사실이 확인돼 전화드립니다.”

지난달 27일 인천 구월동 학이재(學而齋·사진)에선 ‘6070’ 시니어 수강생들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수강생들은 태블릿PC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기꾼인지 아닌지 가려내고 있었다.

학이재는 신한은행이 마련한 노년층 ‘금융교육’ 센터다. 논어 학이편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문장 속 배움의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 시니어 수강생들은 디지털 기기로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실습을 받고 있었다. 인천 간석동에 사는 수강생 A씨는 보이스피싱으로 2000만원을 잃은 피해자다. 그는 “가족 명의의 대포통장이 만들어졌다면서 이를 해결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사기꾼에게 당했다”며 “뒤늦게나마 교육을 받으니 노인이 사기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노년층의 사기를 막고 금융소비를 보호하기 위해 작년 9월 이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매달 300명, 지금까지 1500명가량이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비대면 금융 이용법을 배우고 보이스피싱과 투자 사기 유형을 학습했다. 박윤영 신한은행 소비자보호부 매니저는 “6070세대 노년 재테크족이 많아서인지 교육 열기가 생각보다 뜨겁다”고 귀띔했다.

지난달엔 충남 당진 평생교육원 해나루시민학교에서 수강생 40명이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이곳을 방문했다. 국민은행(KB시니어라운지)과 하나은행(하나원큐 길라잡이) 등 다른 은행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사기가 증가하자 행정기관도 노인 대상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속속 마련하고 있다. 힘들게 모은 노후 자금을 ‘리딩방 사기’ 같은 투자 사기로 날리지 않으려면 교육이 중요하고 그 자체가 복지라는 취지에서다.

서울 강남구 일원평생학습센터에서 진행하는 ‘이슈와 정책으로 푸는 증시 세미나’ 강의가 대표적이다. 이 수업에선 경제신문이 주된 교재다.

정희원/안정훈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