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방금 이 호텔을 예약함.”
“16명이 이 객실을 보고 있습니다.”
“해당일에 ‘저기어때’에서 보신 최저가입니다.”
숙박 예약 사이트에서 호텔을 검색하다 보면 한쪽에 이 같은 긴박한 문구가 연달아 뜬다. 당장 예약 확정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합리적 가격에 좋은 방을 놓칠 것 같은 조바심이 든다. 서둘러 결제 화면으로 넘어가자 원래 200달러로 표시됐던 숙박비는 청소비, 서비스 요금, 체류비, 수수료 등이 더해져 어느새 400달러 넘게 올라 있다.
더 꼼꼼하거나 영리하지 않은 까닭에 낚인 것이라고 스스로를 탓하지 않아도 된다. 소비자가 속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전형적인 ‘다크패턴’이기 때문이다. 다크패턴은 인터넷 사이트나 스마트폰 앱에서 이용자가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교묘하게 설계된 디자인 혹은 구조다.
<다크패턴의 비밀>의 저자 해리 브리그널은 사용자 경험(UX)과 인지과학 전문가로, 다크패턴을 처음 정의해 공론화했다. 다크패턴에 관한 다양한 기업의 사례와 최신 연구를 총망라한 이 책 원서는 내용의 진정성과 편집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 저자가 독립 출판물로 직접 출간했다고 한다.
다크패턴 유형은 다양하다. 숙박 예약 사이트 사례와 마찬가지로 결제 직전에 숨겨진 비용을 공개하거나 굳이 필요 없는 방문자·조회 수 정보를 띄우는 것, 매진 임박 혹은 주문 폭주 메시지로 압박하는 방법 등이 전형적인 다크패턴이다. 사용자 동의 없이 장바구니에 자동으로 특정 제품을 넣어 결제하게 하거나, 무료 체험을 미끼로 반복적으로 구독료를 청구하는 것, 특정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사용하는 시각적 표현 혹은 감정적 문구 등도 다크패턴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광고 페이지를 닫을 수 있는 ‘X’ 버튼을 배경과 같은 색깔로 숨겨놓으면 이용자는 마치 해당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반드시 봐야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한 리테일 업체는 마케팅 이메일 수신 거부 버튼에 ‘괜찮습니다. 전 공짜 돈이 싫어요’라는 문구를 썼다. 실제로는 수신을 거부하면 할인 쿠폰을 주지 않을 뿐인데 공짜 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는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것처럼 묘사해놨다.
다크패턴이 기업 이윤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건 아니다. 대선 후보의 선거자금 모금에도 다크패턴이 쓰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선거 당시 후원 페이지에서 ‘매월 후원’을 미리 선택해뒀다. 주의를 기울여서 선택을 해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매월 후원금이 나가게 된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생일에 후원금을 더 내도록 선택된 항목까지 추가로 만들었다. 이 같은 다크패턴에 당한 지지자들이 뒤늦게 환불을 요청해 트럼프 선거운동본부가 돌려준 후원액은 1억2200만달러에 달했다.
소비생활에서 온라인 쇼핑 비중이 커지고 구독 경제, 비대면 금융거래 등 새로운 형태의 전자상거래가 끊임없이 생겨나면서 다크패턴의 그물은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다. 2022년 유럽의회 연구에 따르면 조사한 웹사이트와 앱의 97%가 다크패턴을 적어도 하나 이상 적용 중이었다. 2020년 영국 미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뉴스와 잡지 웹사이트 300곳의 쿠키 동의 알림을 분석한 결과 99%가 다크패턴을 사용했다.
다크패턴이 위험한 것은 이용자에게 금전적으로 손해를 끼치거나 원치 않는 계약을 맺게 하는 데다 더 심각하게는 불평등을 악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다크패턴은 인지 능력의 취약함을 파고들도록 설계됐다. 여유 시간이 없거나 교육, 소득 수준 등이 낮은 사람이 더 당하기 쉬운 구조다. 언어에 능숙하지 않은 이민자나 인지 장애가 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저자는 인공지능(AI) 발달로 다크패턴이 더 교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개별화·맞춤형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AI는 각각의 이용자가 가장 취약한 점을 파고들어 다크패턴의 그물을 칠 수 있다. 나아가 생성형 AI가 이미 형성된 다크패턴을 학습해 훨씬 발달된 형태의 다크패턴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
심각성을 느낀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선 다크패턴 관련 법률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내년부턴 국내에서도 다크패턴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다. 다크패턴은 갈수록 더욱 교묘하고 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바로 지금 다크패턴을 주목하고 알아야 하는 이유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