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바보' 감독 "제 1번은 안은진, 유아인 캐스팅 이유는…" [인터뷰+]

입력 2024-05-03 12:24
수정 2024-05-03 12:25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말의 바보'를 연출한 김진민 감독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전했다.

김 감독은 3일 서울시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종말의 바보' 인터뷰에서 "설마설마하고, 조마조마했다"며 "이렇게 공개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감사하다'는 마음뿐"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며 웃었다.

'종말의 바보'는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D-200, 눈앞에 닥친 종말에 아수라장이 된 세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소행성 충돌을 믿는 사람들과 불신하는 사람들의 갈등, 범죄자들의 탈옥, 사이비들의 선동, 폭주하는 안전지대로의 이민 요청 등 혼란에 빠진 세상에서 그런데도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연출자인 김진민 감독은 넷플릭스 '인간수업', '마이네임'으로 섬세한 감각을 인정받은 연출자다. 여기에 JTBC '밀회', SBS '풍문으로 들었소' 정성주 작가가 각본을 맡으면서 기획 단계부터 기대작으로 꼽혔다. 하지만 주연 배우 중 한 명이었던 유아인이 약물 불법투약 혐의로 입건돼 재판에 넘겨지면서 1년 넘게 공개가 미뤄져 지난 26일에야 첫선을 보였다.

김진민 감독은 "많은 스태프, 배우들이 고생을 엄청 많이 했다"면서 공개에 의의를 두며, 일각의 '어렵다'는 반응에 "시점이나 풀어가는 방식이 복잡해 보인다는 생각을 저도 했다"며 "그래서 수없이 편집했고, 치열하게 회의했고, 최선의 결과물이 나온 것"이라고 이해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캐스팅된 건 안은진 배우였다"며 "은진 씨가 가장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았고, 그게 유아인 배우였다"며 캐스팅 후일담을 전했다.

다음은 김진민 감독과 일문일답

▲ 작품이 드디어 공개됐다.

공개되기까지 설마설마, 조마조마했다.(웃음) 넷플릭스가 고민이 많았을 거 같은데, 내부적으로 좋은 결정을 해줘서 '감사합니다'가 내 솔직한 마음이다. 많은 스태프, 배우들이 고생을 엄청 많이 했다. 공개돼 한시름 놓지 않았을까 싶다. 원래 작품을 하고 나면 끙끙 앓는다. 공개되면 어떨지, 잘 나올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다들 올해 연말을 생각한 거 같다. 그래서 몇몇과 연락해보니 '생각보다 빨리 나와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다들 간절함이 있었다.

▲ 어렵게 공개했는데, "어렵다"는 반응도 여럿이다.

그런 생각은 저도 많이 했다. 원작은 옴니버스식으로 따로따로 구성됐다. 저희는 다 섞어서 하나의 마을의 이야기로 했다. 그래서 시점이나 풀어가는 방식이 초반부엔 복잡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저도 했다. 우리는 디스토피아물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설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작에서는 '지구가 망한다'인데, 저희는 '한반도 일대'가 파괴 규모가 상당해서 탈출이 가능하다는 걸로 설정했다. 그로 인해 생각이 복잡해졌다. 탈출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남은 사람들의 삶 등을 고민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왜 여기 살면서 종말과 함께하겠다고 생각하게 됐을까'를 염두에 두고 설정을 만들어갔다. 통신과 생필품은 제공이 된다고 두고, 나머지 문제들은 상상해 본거다. 한 번도 디스토피아물에서 보지 못한 설정 때문에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고 짐작했고, 그 부분이 '혼란스럽다'는 걸로 이어진 거 같다.

▲ 유아인이 논란으로 빠져서 그런 게 아니냐는 반응도 있더라.

주인공의 남자친구라 극의 큰 비중인 건 맞았다. 하지만 그 배우의 특정 부분을 고의로 뺐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편집 과정에서 더 두드러지게 하고, 안 하고 이런 건 기술적으로 가능했지만, 이야기에 충실했다. 안은진 씨, 김윤혜 씨 여자들의 캐릭터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유)아인 씨는 마지막 피날레의 느낌을 주는, 피할 수 있지만 피하지 못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거였다. 의도적으로 논란 때문에 편집을 고의로 하거나 많이 들어내거나 한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 시간대가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대본상으로는 시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있지 않았다. 흐름은 시간이 혼재돼 있었고, 그걸 잡아주지 않으면 헷갈릴 수 있겠다 싶더라. 그래서 편집 과정에서 많이 고민했다. 과거부터 순차적으로 보여주자. 과거를 다 모아서 보여주자,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섞을 수밖에 없었던 건 남아있는 시점에 방점을 주기 위해 선택한 부분이었다. 편집을 제 기억만으로 20번 이상 바꿨다. 아인 씨 일이 있기 이전에도 바꿨고, 그 후에도 바꿨다. 가장 이해도가 높은 부분이 무엇일지, 회의를 정말 치열하게 해서 이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 거였다. 현재로선 최선을 다해 내놓은 결과물이었다.

▲ 제작발표회에서 "세경 역할은 안은진이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급작스러운 사건으로 반 학생을 잃은 선생님 역할이다. 정의로우면서도 친숙한 인물이어야 했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는데 은진 씨가 김대명 씨를 기다리며 혼자서 모노드라마 같은 연기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혼자서 잘 노네, 얘 봐라' 싶었다. 그 연기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꾸밈이 없었다. 이 배우랑 함께하면 뭐든 할 수 있고, 시청자들이 충분히 녹아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꽂혔다. 은진 씨 소속사 대표님을 만났고, 고민이 길지 않았다. 그 후 제작 과정에서 교실 장면을 찍는데 '잘하네' 확신했다. 회상으로 들어가는 한 장면이었는데 스스로 만족했다. 은진 씨는 저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하는데, 저는 많이 요구하지 않았다.(웃음) 서로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저는 은진 씨가 내주는 여러 의견, 표현에 충분히 만족했다.

▲ 실험적인 캐스팅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전성우 씨는 연극계에서 유명한 배우였고, 유명세와 상관없이 그 역할에 잘 어울리는 사람을 캐스팅하고 싶었다. 그리고 '열혈사제'에도 잠깐 나왔는데, 이미지적으로 그 순수한 면이 잘 표현해내겠다 싶었다. 김윤혜 씨는 최종적으로 그 역할에 맡는 인물을 못 찾았다. 마지막에 나타났는데, 처음 보고 '이미지는 맞는데,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다'고 해서 3번째쯤 만났을 때 하자고 한 거 같다. 내공이 있던 배우라 잘 해냈다. 현장에서 대치도 많이 하고 더 주문도 많이 했지만, 나중에 쌓이니 서로 잘 해결해 나간 거 같다. 끝나고 나니 딸하고 화해한 아빠 같았다.(웃음) 용기 있는 캐스팅이라고 하는데, 스타를 캐스팅하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 진짜 특급 스타가 올 경우 그 사람 위주로 다시 대본을 정리해야 할 거다. 비즈니스라는 문법에 볼 때 그게 아니니까. 그런 면도 있고. 이 업계가 유지되려면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제 용기로 더 많은 스타가 나올 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저도 데뷔할 때 유명한 작가님이 저를 받아들여 주셨다. 그래서 저 자체도 신인과 함께 작업하는 것에 거부감은 없다. '겁대가리'가 없는 거고, 한편으론 즐기기도 하는 거 같다.(웃음) 일종의 습관 같다.

▲ 그렇다면 유아인을 캐스팅한 이유는 뭘까.

세경의 남자인 거다. 저의 첫 번째 고민은 은진 씨가 연기를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배우가 누구일지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왔을 때 임팩트가 있었으면 했다. 은진 씨의 소속사에 아인 씨도 있지 않았나. 아인 씨는 정성주 작가와 '밀회'라는 작품을 했고, 그게 공감을 많이 받지 않았나. 그래서 대본에 관심이 있다고 했고, 아인 씨 입장에선 자기가 끌고 가는 드라마는 아니라 고민은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아인 씨는 은진 씨를 많이 아낀다고 하더라. 그런 생각이 미치니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세경이, 은진 씨의 파트너로서 아인 씨가 좋을 거 같았다. 그렇게 받아주지 않았다면 은진 씨도 힘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당시엔 잘한 캐스팅이라 생각했고, 설렘도 있었다.

▲ 두 사람의 호흡과 연기에 대한 만족도는

연기만 놓고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인 씨의 역할은 해석하기에 어려운 게 있었다. 연출자로서 연기로 돌파해주길 바랐는데, '아 저래서 큰 배우구나', '저 친구가 왜 사람들에게 칭찬받는지 알겠다'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 '인간수업', '마이네임'에 이어 '종말의 바보'까지 넷플릭스와 연이어 해오고 있다.

넷플릭스와 일하면서 더 압박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고, 자유로운 부분도 있다. 예전엔 순위를 안 매겼는데 '이제 시청률 매기는 방송사랑 똑같잖아' 싶긴 했다.(웃음) 그런데 이건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 받아들이게 됐다. 제작비가 커서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점도 연출자로서는 고마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하서, 작품 준비 기간이 2년 정도 걸리는데, 성공과 실패에 대한 압박감은 더 심해지는 거 같다. 그게 방송 쪽으로도 넘어가서 전체적으로 호흡이 길어진 거 같다.

▲ 계속 다른 장르와 이야기를 해오고 있다.

월드와이드한 장르를 해온 거 같은데, 이제 우리 이야기가 없는지를 이제 생각해보게 된다. 사극이 됐건, 현대극이 됐건 우리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무신' 이후로 안 했는데, '사극에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이 있긴 하다. 그리고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늘 해왔기 때문에, 제가 도전할 수 있는 거라면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 아내 김여진 배우도 차기작을 함께 할 예정인가.

같이하는 첫 조건은 작가님들의 요구로 시작된다. 저를 좋게 봐주셔서 그런 건지, 김여진 배우에 대한 호기심인지, 둘 다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먼저 '함께해야 한다'고 한 드라마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이번에도 정성주 작가님이 캐릭터를 만들어주셨다. 저는 처음에 수녀 역할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를 잃은 엄마 역할을 부탁하셨는데, 좀 놀랐다. 제가 생각한 역할과 달라서. (김여진이) 저도 할 때 만만치 않은 배우라 함께할 땐 각오를 해야 한다.(웃음) 굉장히 정확하고, 좋은 배우라 저도 준비가 필요하다. 배우와 감독으로서의 영역이지 가족적인 부분은 아니다.

▲ 김여진 배우가 말한 '종말의 바보' 강점과 약점은 뭐였을까.

약점은 '어렵다'였고, 강점은 많은 사람이 이 상황에 부닥쳤을 때 여러 감정의 결들을 잘 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 종말이 된다면 어떤 일상을 살아갈까.

저는 50대다. 애가 있으니 기어이 나가려 애를 쓰든, '똑같을 거다'하든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제가 중요한 사람이라 외국에서 초청받으면 좋겠지만, 아마 박혁권 씨처럼 사기를 당하더라도 계속 탈출을 꿈꿀 거 같다. 그러다 실패하면 폼 잡으며 '(종말이 오기 전까지) 하루하루 똑같다. 사과나무를 심을 거다' 이럴 거 같다.(웃음)

▲ '종말의 바보'는 어떤 의미로 남는 작품일까.

결과는 받아들이고 있고, 이 작품이 약점이나 강점이 있는 건 분명한 거고, 받아들일 걸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실수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할 거 같다. 드라마 시청 형태도 많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에 맞춰 변화해야 하는 것도 맞는 거 같다. 저도 그 부분에 대해 곱씹고, 한단계 나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저에게도 대단히 큰 경험을 한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