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해병대 채상병 특검법(채상병 특검법)’을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했다. ‘선(先)구제 후(後)구상’을 핵심으로 하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도 야권 주도로 본회의에 부의돼 오는 28일 최종 처리될 전망이다. 같은 날 여야 합의로 독소조항을 제거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야당의 입법 폭주로 영수회담 이후 첫 협치의 결과물이 빛을 바랬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치권에서는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채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김웅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민주당 등 재석 의원 168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은 채상병 특검법 통과 직후 본회의장 앞에서 “반민주적 반의회적 입법폭주 규탄한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규탄대회를 열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해드리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며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7월 경북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채상병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특검을 도입하는 법안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작년 10월 채상병 특검법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고, 법안은 지난 3월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당초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양측이 한 발씩 물러서 전날 합의를 본 이태원 특별법 등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태원 특별법 처리 직후 과반 의석을 앞세워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채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고, 김 의장이 이를 수용했다. 민주당은 자당 출신인 김 의장을 향해 “개××” “복당을 못 하게 해야 한다”며 특검법 상정을 압박해왔다.
여권은 이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현시점에서 특검 도입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본회의 종료 2시간여 만에 브리핑을 열어 “공수처와 경찰이 본격 수사 중인 사건임에도 야당 측이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는 것은 진상 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채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고 했다. 이어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당연하다”며 “법률에 보장된 대로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공수처의 수사 결과 발표 이후로 특검 도입 시기를 늦추면 특검법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정치권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 직후라 거부권 행사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없지 않지만, 논란이 큰 법안을 일방 처리해 협치 정신을 깬 건 민주당이라는 판단에서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거부권 행사 건의를 결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같은 날 민주당이 밀어붙여 본회의 통과를 앞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도 논란거리다.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보증금 채권을 정부가 우선 매입하고, 차후 구상권을 청구하도록 하는 ‘선구제 후구상’ 내용이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사적 계약에 따른 사기 피해를 정부가 구제한 전례가 없고, 다른 사기 피해와의 형평성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은 오는 28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한재영/양길성/정상원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