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 K-스타트업, K-벤처캐피탈(VC)의 활약이 날로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인재들이 실리콘밸리에 모여들면서 네트워킹도 활발해지고 있고, 결속력도 강해지는 분위기입니다. 올해 초에 열린 대표적인 네트워킹 행사인 ‘82스타트업’에 1000여명의 한인이 몰려들 정도입니다. 한인 VC 중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VC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A2G도 이들 중 한 곳입니다. 단순한 자금 투자와 경영지원의 형태를 넘어서 선배 창업자가 후배의 사업을 뒷받침해주는 적극적 형태의 VC입니다. 공경록 A2G캐피탈 대표 파트너로부터 실리콘밸리 투자 이야기와 스타트업의 성공 방정식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A. A2G캐피탈의 대표 파트너를 맡은 공경록입니다. 한양대학교 97학번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20년 한 뒤 2022년 4월 VC를 창업했습니다. CJ그룹에서 미주투자 총괄을 했고, 그전에는 레노버 실리콘밸리에서에서 AI 투자 리드로 일했고, 그에 앞서 삼성SDS에서 오픈이노베이션 파트장을 맡았습니다. 그 이전에는 LG CNS에서 5년간 엔지니어로 일한 경력도 있습니다. 2014년 초 삼성 주재원으로 미국에 나와 현재까지 8000여명의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습니다.
Q. VC를 설립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최근 미·중 갈등으로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미국 테크산업에 중국 기업과 자본이 빠져나가며 공백이 발생했는데요. 이 공백을 두고 한국 일본 인도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인도에도 좋은 기업이 있지만, 한국 기업도 충분한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스타트업을 지원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여정을 함께하고 싶어 VC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쿠팡 등 한국에서 유니콘으로 성장한 20여개 기업은 대부분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인구 5000만명인 한국에선 사업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시대 & AI 시대인 만큼 ‘제2의 삼성’은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입니다. 한국의 기술과 잠재력을 갖춘 B2B 기업이 미국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A2G의 사명입니다.
Q. A2G 조직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A. 글로벌 시장에 나서는 한국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먼저 미국에 있는 1세대 한인 사업가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이테크는 물론 로우테크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첨단산업 분야에서 후배들의 성공을 돕는 서번트 리더십을 갖추자는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엑시트만 여섯 차례를 한 연쇄창업자인 켄 킴 콩 최고운영책임자(COO)와 130여개 스타트업에 투자해 4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 정지훈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수 등과 뜻을 함께하기로 했고요. 이와 함께 재미 과학자 1세대 기업인 큐리바이오 창업자인 김덕호 존스홉킨스 교수, 노상일 NGL 회장, 알토스 창업자인 한 김, VC 드레이퍼 아테나 창업자인 페리 하, 유니콘 기업인 몰로코의 공동 창업자 박세혁 CIO, 장병규 크래프톤 회장 등 36명이 LP로 참여했습니다.
Q. 현재까지 투자 현황은 어떻게 되나요.
A. 3000만달러 규모의 첫 번째 펀드 조성을 최근 마무리했습니다. 현재까지 11개 기업에 대해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내년 상반기까지 투자를 마무리한 뒤 하반기에 두 번째 펀드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주요 투자 기업으로 첫 번째 투자기업이 사이버 보안 업체 ‘티오리’입니다. 한국인 박세준과 미국인 앤드류가 공동 설립한 기업으로 해킹방어대회 데프콘에서 14년 연속 우승했구요, 주요 고객으로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마이크로소프트(MS), 삼성전자, 두나무 등이 있습니다. 최근 사이버보안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한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장을 받기도 했어요. 이와 함께 컨테이너 물류 관련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인 포트로직스와 음성 및 동영상 생성 AI 기업인 로보 AI(Lovo AI), 어크로스B(acrossB), 러크몬(Luckmon), 아르고스 아이덴티티(Argos Identity), 발칸ID(BalkanID), 모놀리(Monoly) 등에 투자했습니다. 장기간 가까이서 지켜보며 물심양면으로 도와 기술력과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한 뒤 투자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현재 대부분 견실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Q. 사명 A2G는 어떤 뜻인가요.
A. 설립 당시 사명은 K2G였습니다. ‘Korea to Global’이라는 뜻입니다. 세계 무대를 지향하는 한국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사업을 하다 보니 한국을 포함한 일본 등 아시아 시장까지 시야를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인구 1억명의 일본 시장도 한국 기업이 세계 무대로 도약하는 주요 발판 중 한 곳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공동 창업자인 켄 킴 콩 COO가 일본에서 오랜 생활을 한 경력이 있어 일본 시장과 기업에 대해 잘 알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명을 작년 11월 ‘Asia to Global’이라는 이름의 A2G로 변경했습니다. 현재 미국과 한국에서 사업을 진행 중인데 일본에도 곧 직원을 뽑을 예정입니다.
Q. A2G의 가장 큰 차별점은 서번트 리더십인가요.
A. ‘LP의 지혜를 스타트업에 전달한다’가 A2G의 목표입니다. 일반적으로 VC가 적극적으로 투자한 기업을 도와주는 건 흔치 않습니다. ‘힘들 때 막힐 때 연락해라’ 정도죠. A2G는 그렇지 않습니다. 플립과 같은 이슈를 도와주는 건 기본이고요. 해결 과제,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 같이 앉아서 고민합니다. LP들이 대부분 연쇄 창업을 해봤기 때문에 정답은 아니어도 영양가 있는 해법이 나올 수 있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어본 사람과 함께 고민하면 그만큼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경험도 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스타트업의 성장 속도를 촉진할 수 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도우면 보다 많은 이들이 넓은 그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경영철학,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A. “돕자”입니다. ‘도우면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을 열심히 도우면 좋은 투자 기회가 옵니다. 가만히 앉아서, 혹은 귀동냥으로 투자할 만한 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발로 뛰어서 스타트업을 한 곳이라도 더 만나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Q. 올해 계획은 무엇입니까.
A. 오는 6월 10일 ‘비욘드 아시아 테크 서밋’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A2G가 처음으로 여는 행사입니다. SK하이닉스는 어떻게 AI 시대를 바라보고 기술 개발하는지, 크래프톤이 게임에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핑크퐁은 AI를 어떻게 접목하고 있는지 등 15개의 스피치를 통해 한국의 다양한 기업과 스타트업 그리고 AI 석학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플러그앤플레이 본사에서 서밋을 개최할 예정인데요. 300명 정도 참석할 전망입니다. 실리콘밸리의 한인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의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기술 리더쉽을 보여주고 함께 발전하는 혁신의 장이 되길 기대합니다.
Q. 나에게 실리콘밸리란?.
A. 제2의 고향과 같습니다. 저는 30살 전까지 미국에 온 적이 없습니다. 남들보다 다소 늦게 이곳에 왔지만, 실리콘밸리 특유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 원하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열린 마인드, 수평적인 교류, 풍부한 어젠다 등에 매료됐습니다. 또한 나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과 말할수록 점점 더 단단해지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떠들수록 성장하는 것이죠.
저는 직장 생활을 오래 했기에 창업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실리콘밸리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Q. 후배 창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더 많은 한국인이 미국에, 실리콘밸리에 왔으면 합니다. 중국인이 떠난 빈자리를 한국인이 채웠으면 합니다. 한국은 이스라엘보다 인구가 10배나 많습니다. 이스라엘 기업은 뉴욕증시에서 수천개의 IPO를 했습니다. 한국 스타트업들도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가능한 많은 기업을 도와 또 한 번의 성공스토리, 새로운 귀감을 만들고 싶습니다. 많은 분이 함께 도전했으면 합니다.
실리콘밸리=최진석 특파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