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만 해도 달러당 140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이 장중 160엔 선까지 뚫렸다. 일본 정부가 개입했다고 추정되는 엔화 매수세로 인해 150엔대로 내려앉았지만 ‘엔화 약세’에 베팅하는 시장 흐름을 일시적으로 누른 데 불과하다는 평가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 26일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후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단기적으로는 150엔대 방어가 가능하더라도 미국 통화정책 등에 따라 170엔을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슈퍼 엔저’에 일본 정부 나섰나
29일 교도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일본이 쇼와 일왕 생일을 기리는 휴일이어서 엔화 거래량이 적은 가운데 오전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엔화 매도세가 확대됐다. 엔화는 유로화에도 약세를 보여 엔·유로 환율이 1999년 유로화 도입 이후 최고인 유로당 171엔대까지 올랐다.
오후 들어서는 상황이 급변해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55엔대 초반까지 하락했다. 시장은 일본 정부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간다 마사토 일본 재무성 재무관은 시장 개입 여부와 관련해 “노 코멘트”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일본 정부가 이번 엔화 매수에 개입했다면 2022년 10월 이후 1년 6개월 만이다. 실제 개입 여부는 일본 재무성이 5월 말 발표하는 ‘외국환평형조작 실시상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도 ‘슈퍼 엔저’ 기조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22년 10월 엔화 매수 개입액은 5조6202억엔으로, 1991년 4월 이후 최대였다. 그런데도 엔·달러 환율은 1년여 만에 달러당 151엔대 후반까지 올랐다. 미국과의 금리 차이, 무역수지 적자 등에 더 강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됐다.
이 때문에 시장은 30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열리는 미국 중앙은행(Fed)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에 주목한다. Fed가 이번 FOMC에서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인 모습을 보이면 엔화 약세 요인이 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달러 환율이 170엔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선방하는 위안화
원화는 엔화 약세 움직임에 동조하며 불안한 흐름을 이어갔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장 대비 3원70전 오른 1379원에 개장했다가 엔·달러 환율이 160엔대를 찍었을 때 1384원60전까지 급등했다. 오후 들어 엔화가 강세 흐름을 보이자 환율은 1378원대로 내려왔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원화, 엔화, 위안화는 아시아 통화로 묶여 엔화 변동에 영향을 같이 받는다”면서도 “일본과 한국이 수출시장에서 경쟁하는 품목이 과거보다 줄었기 때문에 엔화 약세 영향이 예전만큼 크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중국 위안화는 원화, 엔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나타냈다. 이날 하루 동안 달러당 7.24위안대에서 움직였다. 중국 정부는 위안화 환율 방어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22일 2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침체된 소비를 되살리기 위한 추가 통화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위안화 약세를 의식해 금리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지속적으로 팔고 있는 것도 위안화 방어 효과를 내고 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현재 중국 정부가 보유한 미 국채는 전월보다 227억달러 감소한 7750억달러였고, 일본 정부는 164억달러를 순매수해 1조1680억달러였다. 장밍 중국사회과학원 금융연구소 부소장은 “연말까지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약 7.0위안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경제/좌동욱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