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네처럼 기사를 두고 차를 끄냐, 술을 X마시냐, 골프를 치냐!"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2시간 동안 마이크를 꽉 쥔 채 속풀이를 했다. 눈물, 욕설, 하소연, 비난으로 뒤덮인 2시간. 하이브가 제기한 경영권 탈취 의혹으로 '제2의 피프티 사태'라는 눈총을 받던 민 대표를 향한 여론은 뒤집혔다.
민 대표는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처음으로 취재진 앞에 섰다. 뉴진스를 데뷔시킬 때도, 역대급 글로벌 성과를 냈을 때도 언론 노출을 최소화했던 그는 수십 대의 카메라에 얼굴을 비쳤다. 수수한 차림새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타난 민 대표는 기자회견 초반 카메라 셔터 소리, 플래시 세례에 당황하며 한숨을 쉬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십여분 뒤 긴장이 풀린 듯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날 민 대표는 크게 네 가지를 이야기했다. ▲경영권 탈취 의혹에 대한 반박 ▲하이브와의 갈등 배경 ▲부당한 주주 간 계약 체결 ▲뉴진스와의 연대 강조였다.
민 대표 앞에 놓인 것은 휴대전화 한 개뿐. 대본 없는 날 것의 기자회견이었다. 민 대표는 "하이브는 뉴진스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게 맞냐"며 울부짖었다. 그는 뉴진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생기자 르세라핌의 데뷔가 선행됐고, 홍보를 자제하라는 강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자기와 뉴진스는 '눈 밖에 난 자식'이었다는 것이었다.
방시혁 의장, 박지원 CEO 등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까지 공개했다. 방 의장은 걸그룹 제작 초반 'SM은 잊고 민희진 월드를 건설하시는 걸로', '에스파 밟으실 수 있죠?' 등의 말로 민 대표에게 힘을 실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 SM을 퇴사했던 민 대표의 갈증을 정확히 파악하고 건드린 셈이었다. 앞서 걸그룹 글램을 내놨다가 실패한 이력이 있는 방 의장은 민 대표의 감각을 기대했다.
하지만 음악, 연습생 선발 과정 등에서 이견이 생기며 균열이 시작됐다. 결국 각자의 그룹을 내게 되면서 둘은 완전히 돌아섰다. 민 대표에 따르면 뉴진스가 데뷔하고도 연락한 적 없었던 방 의장은 뉴진스가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오르자 '즐거우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민 대표가 웃음으로 답하자, '왜 웃어요? 진짜 궁금한 건데', '즐거우시냐고요' 등의 메시지를 추가로 보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톤이었다.
민 대표는 '개저씨', 'XX새끼들', 'X신', '양아치' 등의 표현을 쓰며 울분을 토했다. 굴지의 엔터 기업인 하이브의 내부 사정을 가감 없이 폭로하며 "하이브는 진짜 반성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 거침없는 말투에 오히려 온라인상에서는 "국힙 원탑",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일부 장면들에 비트를 삽입해 민 대표를 래퍼처럼 묘사한 영상이 나오며 밈(meme)처럼 퍼지고 있다.
거대 권력에 맞선 그를 보며 "불쌍하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민 대표가 오열하며 말한 부분은 뉴진스 멤버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리고 업무에 대한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할 때였다. 그는 "쏘스뮤직은 내부 캐스팅하면서도 내 손을 탈까 봐 애들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내가 준 곡으로 연습시키고, 내가 안무 디렉터랑 디렉팅하면서도 애들을 못 만나게 했다. 애들을 뺏어갈 거라 생각했는지"라며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기자회견을 모니터링하며 하이브 내부 역시 술렁였다는 후문이다. 특히 방 의장, 박 CEO 등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적나라하게 공개돼 상황에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민 대표의 평소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싶었는데 견고한 윗선에 맞선다는 느낌에 여론이 꽤 많이 뒤집혀 놀랐다"고 전했다.
다만 경영권 탈취 의혹에 대해서는 반박 근거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민 대표는 어도어 부대표가 작성한 '궁극적으로는 빠져나간다'는 내용의 문서가 단순한 생각을 적은 것이라며 "직장이 마음에 안 들고 직장 사수가 마음에 안 들면 푸념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 배경에는 '주주 간 계약'이 있다고도 했다. 민 대표의 변호인은 "주주 간 계약 협상에서 서로 생각하는 게 달랐다. 입장 차가 있어서 진행이 잘 안됐다. 그 답답하던 찰나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되지 않냐. 그 생각을 담은 메모"라고 했다.
하이브는 이 부분을 파고들며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민 대표의 여러 주장에 일일이 반박하지 않고, '경영권 탈취 시도'에만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이다. 하이브는 오는 30일 열릴 예정인 이사회에서 민 대표의 해임을 요구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