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1분기 경제 성장률이 시장 예상을 큰 폭으로 벗어나자 한국은행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대내외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져 통화정책 타이밍을 정하는 게 어려워지면서다.
26일 한은(총재 이창용·사진)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음달 23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어 기준금리 변경 여부 등을 논의한다. 회의 직후엔 성장과 물가 전망 등을 담은 ‘수정 경제전망’을 공개한다. 이날 통화한 한은 관계자는 “최근 국내외 거시 경제 지표들이 예상과 다르게 나오는 상황에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잇따라 터져나와 당혹스럽다”며 “통화신용정책 수립이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한은은 경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통화정책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25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6%로 시장 전망치(2.4%)를 크게 밑돌았다. 같은 날 나온 한국 GDP 증가율(1.3%)은 미국 상황과 반대로 전문가들의 예상치(0.6% 내외)를 두 배 이상 웃돌았다. 지난 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불과 3개월 만에 0.6%포인트 끌어올렸다. 당시 이창용 한은 총재도 “(조정폭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 나라의 경기(고용)는 물가와 함께 금리정책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변수로 간주된다. 경기 전망이 불확실하면 통화정책을 선제적으로 수립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제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돌발 변수도 잇따르고 있다. 한은은 하반기 통화정책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로 유가를 꼽는다. 연말 연초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 유가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서부텍사스원유(WTI) 기준 배럴당 80달러를 웃돌고 있다. 이런 유가가 지속되면 한은이 연말 목표로 하는 2%대 초반의 물가는 기대할 수 없다.
통화정책이 정치적 사안으로 번질 조짐이 나타나는 것도 고민거리다. 1분기 ‘깜짝’ 성장률 지표가 나온 뒤 정치권에서 ‘전 국민 지원금’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은 당분간 사회 문제에 거리를 두면서 거시와 미시 경제를 분석하고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