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지난 2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복숭아와 수박은 1년 전보다 가격이 각각 64.7%, 52.9% 올랐다. 사과와 대파값이 크게 상승해 선거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복숭아와 수박까지 가계 부담을 키운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하지만 현실엔 없는 일이다. 3월에 국내에서 복숭아와 수박은 거의 판매되지 않아서다. 제철과일인 복숭아는 10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수박은 9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출회되지 않는다. 두 과일 모두 검역 규제 때문에 수입할 수도 없다. 시장에서 살 수 없는 복숭아와 수박 가격이 급등했다고 정부 부처가 공식 발표한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금복숭아 미스터리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소비자물가지수를 구성하는 458개 품목 중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 1~6위 품목이 모두 과일이었다. 사과(88.2%)와 배(87.8%)는 지난해 작황 부진 등으로 사상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과와 배 대체품으로 여겨지는 귤(68.4%)과 감(54.0%)도 수요가 몰리면서 값이 뛰었다.
이런 과일값 폭등은 복숭아와 수박처럼 생산도, 판매도 되지 않는 다른 과일의 물가지수를 끌어올린다. 복숭아의 수확기는 통상 6~9월인데, 보관 기간이 길어야 한 달 남짓에 불과하다. 수박도 여름이 지나가면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과일이다. 거래되지 않는 과일값이 치솟은 이유는 통계청이 계절에 따른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 과일의 물가상승률을 간접적으로 추론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구성하는 품목은 크게 ‘보합 기간’이 있는 품목과 그렇지 않은 품목으로 나뉜다. 보합 기간이란 계절성 때문에 가격을 직접 조사할 수 없는 시기에 다른 유사 품목의 물가 상승률을 대입해 물가 상승률을 추론하는 기간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복숭아와 수박이 보합 기간이었던 지난달에 통계청은 사과나 배 등 보합 기간이 없는 과일의 전월 대비 물가 상승률을 복숭아와 수박의 지난 2월 소비자물가지수에 곱하는 방식 등으로 3월 상승률을 추정한다. 보합 기간이 있는 품목은 농수산물 11개 품목과 공업제품 6개 등 총 17개다. 복숭아(10~6월), 수박(9~4월), 참외(9~2월), 딸기(6~11월), 감·귤(4~9월), 오렌지(7~12월), 체리(3~5월, 9~11월) 등 과일별로 보합 기간도 다르다. ○수입 규제 풀어야이런 방식은 수출입이 제한된 과일 품목에서 ‘통계 착시’를 불러올 수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집계됐는데, 복숭아와 수박의 기여도는 각각 0.05%포인트와 0.048%포인트로 계산됐다. 이들 품목만 물가지수에서 제외됐더라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0%로 낮아지는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로 나온 지난 2월엔 참외도 보합 기간이었다. 복숭아와 수박, 참외를 제외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하락한다.
일부 전문가는 통계 착시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합 기간에 들어간 품목의 가중치를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현재의 보합 방식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 등에 따라 2017년 한 차례 업그레이드됐다”며 “한국뿐 아니라 유럽 미국 등 다른 국가들도 계절성이 강한 품목에 대해 마찬가지로 보합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중치 조정 등을 통해 통계산출 방식에 손을 대는 건 통계 조작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수입 규제를 풀어야 통계 착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작황이 부진하더라도 수입을 통해 공급을 늘려 가격을 조정할 수 있어서다. 농식품부는 올해 과일 작황이 양호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냉해 피해가 없고, 2월에 낮았던 일조량이 점차 회복돼서다.
이광식/박상용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