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꺾이지 않는 가운데 중동 분쟁 여파로 국제 유가마저 강세를 보이면서 세계 각국의 물가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세계 물가상승세 둔화가 상당 기간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만 한국은 영미권 국가들에 비해 근원·기대물가 상승률 등이 낮아 상대적으로 빨리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21일 외신 등을 종합하면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5% 올랐다. 시장 예상치(3.4%)를 웃돌았다. 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전월과 마찬가지로 3.8%에 달했다. 영국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3.2%로, 시장 예상치(3.1%)를 웃돌았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4.2%에 달했다. 한국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전월과 같았다. 다만 근원물가 상승률은 2.4%였다. 유로존 20개국의 3월 소비자물가는 2.4% 올라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이어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6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조정’에서 세계 연평균 물가상승률을 올해 6.8%, 내년 5.9%로 전망했다. 1월 전망 때에 비해 올해와 내년 전망치를 각각 0.1%포인트 높였다.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중국의 수출 추가 제한에 따른 상품 물가 상승 가능성 등을 반영했다.
한국과 일본 등은 주요 선진국 중 상대적으로 빨리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10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끈적한 물가(sticky inflation) 현상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는 ‘인플레이션 고착화(inflation entrenchment)’ 수준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9위로 일본(10위)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1위는 호주, 2위는 영국, 공동 3위는 캐나다와 스페인, 5위는 미국이었다. 6~8위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였다. 한국과 일본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직전 조사에도 각각 9위와 10위로, 순위가 동일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근원물가 △단위 노동비용 △인플레이션 확산 수준(물가가 전년 대비 2% 이상 상승한 품목 비중) △기대인플레이션(소비자의 1년 후 물가 전망) △구글 검색 동향 등 5개 지표를 토대로 점수를 산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와 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국가는 인플레이션 억제에 상당히 선전한 반면 호주 등 영어권 국가는 인플레이션 억제가 지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어권 국가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타국 대비 40% 많은 재정 부양을 하고 신규 이민자를 상당수 받아들인 결과 수요가 촉진돼 근원물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또 소비자물가 하위 지표 가운데 전년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이 2%를 웃도는 지표 비중을 측정한 ‘인플레이션 확산 수준’ 또한 호주 등 영어권 국가가 가장 높았다고 분석했다.
강경민/박상용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