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대장주인 엔비디아가 10% 하락하면서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300조원가량 증발했다. TSMC, 인텔, ASML 등 다른 글로벌 반도체 종목도 나란히 급락했다. 반도체 시장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ASML, TSMC가 올 1분기에 부진한 지표를 발표한 영향이다. 반도체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면서 ASML, TSMC보다 글로벌 대장주인 엔비디아가 더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 시장에선 반도체 경기 불황 가능성에 따른 장기 침체보다는 단기 조정에 가깝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곳곳에서 “반도체 경기 우려” 신호엔비디아는 지난 19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10%(84.7달러) 하락한 762달러에 마감했다. 이 회사 주가가 700달러 선으로 떨어진 것은 올 2월 29일(791.12달러) 후 처음이다. 이날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1조9050억달러(약 2628조9000억원)로 전날보다 2120억달러(약 292조6000억원)나 빠졌다.
엔비디아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반도체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4.12% 내린 4306.87에 마감했다. 올 들어 가장 큰 낙폭이다. TSMC(-3.46%) ASML(-3.32%) 인텔(-2.40%) 등 다른 반도체 종목도 줄줄이 하락했다.
이들 종목이 주춤한 것은 반도체 시장이 정점을 찍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된 결과다. 반도체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은 올 1분기 노광장비 신규 수주액이 36억유로로 시장 추정치(54억유로)를 33.3%나 밑돌았다.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1위 업체인 TSMC도 18일 실적설명회에서 올해 파운드리 시장 매출 증가율을 10%대 중후반으로 제시했다. 올해 초 밝힌 20%보다 큰 폭으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여기에 엔비디아 등으로부터 반도체를 사들여 서버,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회사인 슈퍼마이크로컴퓨터(SMCI)가 예비 실적 발표를 건너뛴 것도 영향을 미쳤다. 다음달 7일 실적 발표를 앞둔 이 회사는 실적 발표 11일 전에 통상 하던 예비 실적 발표를 하지 않았다. 부진한 실적을 내 이번에는 생략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반도체 경기의 가늠자로 통하는 회사들의 핵심 지표가 어두운 전망을 가리킨 것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가 들어가는 스마트폰·PC 수요가 ‘불황의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엔비디아의 새 그래픽처리장치(GPU) 출시일이 예정보다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도 투자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반짝 할인 기간, 지금은 살 때”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종목도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전자는 19일 2.51% 떨어진 7만7600원에 마감했다. 17일 ‘8만전자’(삼성전자 주가 8만원)가 깨지는 등 하락세가 이어졌다. SK하이닉스도 19일 4.94% 떨어진 17만3300원에 마감했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주의 하향 곡선을 놓고 ‘기술적 조정’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다음달 엔비디아 실적 발표가 분수령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황은 이미 바닥을 확인했다”며 “조정 국면을 활용해 반도체 주식을 사 모으는 것이 좋은 투자전략”이라고 말했다.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본격화했다”며 “AI 반도체 종목의 상승 랠리는 6개월~1년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익환/류은혁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