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이 길다고 해서 장타자에게 무조건 유리한 건 아니다. 21일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스에서도 그랬다. KLPGA투어 대회 코스 중 가장 긴 전장을 자랑하는 경남 김해의 가야CC(파72·6818야드)에서 펼쳐진 이 대회에서 최은우(29·사진)가 우승했다. 최은우의 올 시즌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26.3야드로 96위에 불과하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저력은 정확도였다. 90%가 넘는 페어웨이 안착률을 바탕으로 1년 전 생애 첫 승을 수확한 곳에서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이끌어냈다.
초속 5.5m의 강한 바람 탓에 선두권 선수들이 좀처럼 타수를 줄이지 못한 가운데 최은우는 이날 최종 3라운드에서 버디 2개와 보기 1개를 묶어 1언더파 71타를 쳤다. 최종합계 8언더파 208타를 적어낸 최은우는 7언더파로 공동 2위에 오른 정윤지(24)와 이동은(20)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시즌 첫 승을 올렸다. 이 대회 역사상 첫 번째 다승자가 된 최은우는 우승 상금 1억6200만원을 챙겼다.
1·2라운드에서 각각 5언더파와 2언더파를 쳐 이틀 연속 공동 선두에 오른 최은우는 강한 바람이 불어닥친 최종 라운드에서도 92.8%(13/14)의 페어웨이 안착률을 자랑했다. 그러나 5번홀(파4) 두 번째 샷이 그린 주변 벙커로 향하면서 이날 처음 보기를 범했고 이후에도 제자리걸음을 반복해 우승 경쟁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정윤지가 9번(파5)과 10번홀(파5)에서 연속 버디를 솎아내며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선 가운데 최은우는 침착하게 때를 기다렸다. 14번홀(파4)에서 약 4m 버디 퍼트를 떨어뜨려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최은우는 15번홀(파4)에서 보기를 범한 정윤지를 1타 차로 추격했다.
승부는 17번홀(파3)에서 갈렸다. 최은우의 티샷이 핀과 약 2m 거리에 멈췄다. 까다로운 내리막 버디 퍼트가 홀로 빨려 들어가자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홀에서 보기를 기록한 정윤지를 1타 차로 따돌리고 다시 단독 선두로 올라선 순간이었다. 최은우는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이 그린 가장자리에 걸렸지만 2퍼트로 마무리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선두를 한 번도 내주지 않고 우승하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으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최은우는 “제가 생각한 것보다 버디가 일찍 나오지 않아 한 번의 기회를 기다렸다”며 “가장 어려운 두 홀에서 버디를 잡은 게 큰 역할을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작년에 처음 우승한 코스여서 좋은 기억만 남아 있었다”며 “자신감 있는 코스에서 두 번 연속 우승할 수 있어서 뜻깊다”고 했다.
18번홀에서 약 8.5m 버디 퍼트를 놓친 정윤지는 지난주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준우승에 만족했다. 루키 이동은이 이날만 4타를 줄여 정윤지와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신인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