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마라톤 승부조작 발각…"일부러 속도 늦췄다"

입력 2024-04-20 09:53
수정 2024-04-20 10:05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하프마라톤 대회 중 있었던 승부조작에 대회 조직위원회가 담당자들을 엄중히 문책한다고 밝혔다.

2024 베이징 하프마라톤 조직위원회는 19일 "'대회 결과에 대한 조사 및 결정'을 통해 1~4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 4명의 성적을 취소하고 메달과 상금을 모두 박탈한다"고 밝혔다.

조직위 측은 "조사 결과 페이스메이커로 참여한 4명의 외국인 선수 가운데 1명은 도중에 경기를 포기했지만 3명은 앞서 달리다가 마지막 2㎞를 남겨놓고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췄다"며 "그 결과 중국의 허제 선수가 1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직위 역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사과하며 "이 사건을 교훈 삼아 스포츠 정신을 고양하고 대회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우승자인 허제를 비롯해 로버트 키터, 윌리 응낭가트 등 2명의 케냐 선수와 에티오피아 국적의 데제네 비킬라의 성적을 모두 취소했다. 또 베이징시 체육경기관리 국제교류센터와 중아오러닝 체육관리센터 등 대회 주최사들의 자격을 정지하고 관계자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기로 했다.

논란의 하프 마라톤 대회는 지난 14일 진행됐다. 당시 중국 남자 마라톤 기록 보유자인 허제는 로버트 키터, 윌리 응낭가트 등 2명의 케냐 선수와 에티오피아 국적의 데제네 비킬라와 선두 그룹을 형성하며 결승선으로 향했다. 이때 응낭가트가 허제에 보면서 속도를 늦추며 먼저 가라는 듯한 손짓을 보이자, 허제가 선두로 나서며 근소한 차이로 이들을 앞섰다. 이어 키터가 속도를 내서 달리는 비킬라를 손으로 막아서는 장면도 포착되면서 승부 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이 대회에서 허제는 1시간3분44초를 기록했고, 나머지 3명의 선수는 모두 1시간 3분 45초를 기록해 공동 2위를 차지했다.

대회 영상이 공개된 직후 중국 내에서도 네 선수가 동일한 브랜드의 마라톤화를 신고 운동복을 착용했으며 이 회사가 행사 스폰서를 맡았다는 점에서 대회 조직위원회나 스포츠 에이전트가 개입해 승부조작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베이징 체육국은 지난 15일 조사에 나섰다.

응낭가트는 BBC스포츠 아프리카와 인터뷰에서 "나를 포함해 4명이 중국 선수의 페이스 메이커로 고용됐다"며 "왜 그들(대회 주최 측)이 내 몸에 '페이스 메이커'라는 표시 대신 이름과 숫자를 붙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응낭가트는 앞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뷰에서는 "친구라서 허제가 우승하게 했다"면서 "그렇게 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고 금전적 보상도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다른 선수들은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조직위 측은 "규정에 따라 특별 초청 선수와 페이스메이커는 경기 출전 신청을 하고 주최 측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대회 공동 주최사인 중아오러닝 체육관리센터와 후원사인 스포츠용품회사 터부는 28명의 국내외 선수를 대회에 초청했는데 페이스메이커를 별도로 표기하지 않고 초청 선수 자격으로 대회에 참가시켰다"고 전했다.

중아오러닝과 터보도 곧바로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터보는 조직위의 징계 결정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면서 담당자 실수로 페이스메이커가 초청선수로 등록됐다며 관련자들을 엄중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중아오러닝은 깊은 자책과 유감을 표했다.

이 같은 승부조작은 중국 내 마라톤 인기와 관련됐다는 분석이다. 미국 NBC는 중국 내 중산층을 중심으로 마라톤이 급속하게 대중화되면서 도덕적 해이도 급증했다고 전했다. 2018년 선전 하프 마라톤 주최 측은 가짜 배번호를 달거나 지름길로 달리는 등 부정행위를 한 참가자 258명을 적발했다.

중국육상협회도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중국 내 마라톤의 폭발적 인기가 문제점을 노출했다"고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