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00명 증원' 물러섰는데…의료계, 백지화만 고집

입력 2024-04-19 18:42
수정 2024-04-29 16:07

정부가 내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최대 1000명까지 감축하는 절충안을 제시하면서 꽉 막혀 있던 의정 갈등이 해소 국면에 들어설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새로운 의사 수급 추계를 통해 내년 이후 의대 증원 인원 조정 가능성의 문을 열어놨다. 하지만 의사단체들이 여전히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어 정부의 양보가 얼마나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내년 정원 최대 1000명까지 감축
정부는 19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어 전날 국립대 총장들이 제안한 ‘의대 증원 규모 최대 50% 자율 조정’ 방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올해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이 2025학년도에 한해 증원된 인원의 50~100% 범위에서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린다는 정부 방침은 유지하되, 내년도에 한해 증원 인원을 최대 절반까지 줄이는 것이다. 전날 강원대 경북대 등 6개 거점국립대 총장이 건의한 ‘의대 자율 증원’ 안을 받아들인 절충안이다.

2000명 증원을 고수하던 정부가 총장들의 제안을 하루 만에 수용해 의료계에 손을 내민 것은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이 두 달째 이어지면서 환자들의 피해가 커지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총리는 회의가 끝난 후 브리핑을 통해 “의료계의 단일화된 대안 제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의료 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그대로 방치할 순 없다”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민과 환자의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여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의대 교수들이 제출한 사직서 효력이 발생하는 오는 25일 이전에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반영됐다. 중증·응급 의료를 담당하는 의대 교수들마저 소수라도 병원을 이탈하면 전공의 이탈 이후 간신히 버티고 있는 비상진료체계가 한층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명 중 최대 1000명까지 감축하는 방안은 정부가 증원 근거로 활용한 수급 추계 논문의 저자 등 의료계 내부에서 제기해온 적정 증원 규모와 비슷하다. 정부의 ‘2000명 증원’ 근거가 된 보고서를 쓴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지난 3월 한 학회에서 “1000명씩 10년 동안 늘리며 연착륙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제시했다. 홍승봉 대한뇌전증센터학회장 역시 “매년 1004명씩 10년간 증원해서 속도를 조절하고, 5년 후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 상황을 재평가해 의대 정원의 증감을 다시 결정하자”고 제안했었다.

정부는 내년 이후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해서도 조정 가능성을 열어놨다. 정부 관계자는 “다음주 출범하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의료계가 참여해 정부와 의사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과학적 추계가 마련된다면 향후 정원을 그에 맞춰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점 재검토’ 고수하는 의사들의료계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이날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은 채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임현택 차기 의협 회장은 “전보다 나은 안이지만 의협이 움직일 만한 건 아니다”며 “이번 제안은 국립대 총장조차 의학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고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비대위 관계자는 “수치를 조절해도 전공의들은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원점 재검토’가 담보되지 않는 한 정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정부는 의료계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계에서 원점 재검토 또는 1년 유예를 주장하고 있지만 2025년도 입시 일정의 급박성 등을 감안할 때 현재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의료계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이지현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