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로 ‘벨 에포크(La Belle poque)’는 아름다운 시절이다. 대체로 1880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다. 벨 에포크에서 착안한 ‘팝 에포크’는 필자가 지어낸 신조어다. 팝(pop music), 즉 대중음악의 벨 에포크라면 비틀스의 1960년대를, 레드 제플린의 1970년대를, 마이클 잭슨의 1980년대를 떠올릴 수도 있다. 다른 이는 너바나의 1990년대, 뉴진스의 2020년대를 꼽을지도. 당신의 팝 에포크는 언제인가. 베토벤의 1800년대, 말러의 1900년대라고 해도 좋다. 팝 에포크의 팝은 팝 뮤직뿐 아니라 내 귀를 ‘펑!(pop!)’ 뚫어준 환희와 충격의 아름다운 청각 시대를 가리키니까. 팝 에포크는 매번 ‘당신(또는 그들)의 팝 에포크는 언제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리라. 그리고 첫 회 주인공은 장애인이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환희와 충격의 아름다운 청각시대1984년 12월 31일 오후, 영국 셰필드 외곽의 자동차 전용도로. 릭 앨런은 여자친구와 스포츠카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즐거움도 잠시. 앞차를 추월하려고 속력을 높인 순간 차는 그만 통제력을 잃고 커브길의 돌담을 들이받은 뒤 차도 밖으로 이탈한다. 차체 밖으로 튕겨 나간 앨런은 그 치명적 사고에서 천운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왼팔을 잃었다.
앨런의 삶은 그때까지만 해도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우상향하고 있었다. 그가 몸담은 록 밴드 데프 레퍼드의 일원으로서…. 앨런은 드러머였다. 사고 직후, 그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드러머에게 한 팔이 없다는 것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없는 길이라면 만들어 질주해 보기로 했다. 앨런만을 위한 아주 특별한 드럼 세트를 만들어 보기로…. 1980년대 중반 당시로선 최첨단이던 전자 북, 즉 트리거(trigger) 기술을 활용했다. 왼팔은 왼발이 대신하게 했다. 왼발 앞에 네 개의 페달을 배치해 팔의 역할을 발이 해내도록 했다. 실낱같은 재기의 가능성을 찾은 앨런은 화려한 아레나와 스타디움 무대를 뒤로 하고 자신의 작은 집에 틀어박혔다. 낯선 새 친구, 일렉트로닉 드럼 세트와 씨름을 시작했다.
1986년 8월 5일. 드디어 디데이가 왔다. 영국 레스터셔 도닝턴의 벌판에서 열린 초대형 야외 음악축제 ‘몬스터스 오브 록’ 페스티벌. 이날 출연진인 오지 오즈번, 스콜피언스의 멤버들이 백스테이지 대기실로 앨런을 찾아와 힘찬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그래도 앨런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보컬 조 엘리엇과 어깨를 걸고 위스키 몇 모금 나눠 마신 뒤에야 드넓은 무대를 향해 뛰어나갈 수 있었다. 첫 곡은 하필 3집 수록곡 ‘Stagefright(무대공포증)’. 한 팔과 두 다리로 연주하는 천둥 같은 드럼 소리가 레스터셔의 벌판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팔다리를 휘두르는 앨런의 눈에선 자신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피아니스트 비트겐슈타인 “내겐 왼손 다섯손가락이 남아있다”
앨런의 왼팔은 파울 비트겐슈타인(1887~1961)의 오른손을 떠오르게 한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이기도 한 파울은 1913년까지는 잘나갔다. 1890년대 세계 최고 부호로 꼽히던 오스트리아 기업인이자 예술 애호가 카를 비트겐슈타인이 부친. 그 덕에 어려서부터 집에 드나들던 특급 손님들과 자연스레 어울렸다. ‘부모님 친구’들과 나란히 피아노 연주를 했던 것이다. 그 어른 친구들이 브람스,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이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 파울에게, 그리고 전 세계인에게 비극이 찾아왔다. 벨 에포크를 끝장낸 1차 세계대전(1914~1918)의 발발이다. 입대 영장을 받은 파울은 최전선에 투입됐고 1914년 늦여름, 오스트리아 북부의 갈리시아에서 러시아군과 맞선다. 20일간 무려 53만 명의 사상자를 낸 피비린내 나는 전투. 그 한가운데서 파울은 오른쪽 어깨 바로 밑에 총탄을 맞고 만다. 설상가상 러시아군에 사로잡혀 시베리아의 포로 수용소로 끌려갔다. 오른팔을 잃은 상태로 러시아의 병상에서 깨어난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수용소 마당에 굴러다니는 나무판자를 주워 피아노 건반을 그려 넣었다. 왼손의 다섯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되뇌었다. ‘내겐 아직 왼손이 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남아있다.’
포로 교환으로 생환한 뒤 그는 다시 피아니스트로 살기로 한다. 기존 작품을 왼손만으로 칠 수 있게 손수 편곡했다. 한 손의 초인적 기량과 페달 테크닉을 결합해 불가능해 보이는 가능성에 도전했다. 유명 작곡가들에게 왼손을 위한 신곡 작곡도 의뢰했다. 슈트라우스, 브리튼, 프로코피예프, 코른골트 같은 명장들이 기꺼이 파울에게 왼손 피아노곡을 헌정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이 바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다. 지난 3월 9일 윤한결 지휘, 장 에프랑 바부제 협연으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선보인 그 작품이다. 3월 31일에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도 연주됐다. 장애도 음악 굴복시킬 수 없어1980년대의 릭 앨런, 1910년대의 파울 비트겐슈타인. 두 편의 인간 승리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두 사람이 핸디캡을 극복한 데는 각각 첨단기술과 작곡가의 역량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개인의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이 모든 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극복의 스토리가 아니라 실패의 이야기가 돼 역사 속에 영영 묻혀버렸을지도. 지금은 다양한 피아니스트가 즐겨 도전하는 레퍼토리가 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도 애당초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2024년 4월 20일, 올해 장애인의 날에 또 다른 입지전적 스토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세계 최초의 청각장애인 아이돌 그룹 ‘빅오션’이 이날 데뷔한다. 김지석, 박현진, 이찬연의 3인조다. 데뷔 싱글 ‘빛’은 H.O.T.의 동명 곡을 리메이크한 노래. 안무와 함께 한국어 수어(KSL), 영어 수어(ASL), 국제 수화(ISL)로도 노래를 표현한다.
‘앞으로 열릴 당신의 날들을/환하게 비춰줄 수 있는/빛이 되고 싶어/이제 고개를 들어요/눈부신 빛을 바라봐요.’
‘빛’의 가사처럼 멤버들은 실제로 빛의 도움도 받았다. 노래 녹음 과정에서 첨단 ‘빛 메트로놈’을 활용해 낮은 청력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게 소속사 측 설명이다. 청각장애인들의 난제인 음정과 가창력도 AI 음성 기술로 보완했다고. 그날 베일을 벗을 퍼포먼스와 노래는 어떨지, 그룹 이름처럼 지구상 누구든 K팝 아이돌이 될 수 있다는 커다란 가능성의 대양을 그들이 활짝 열어젖힐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기술의 발달은 음악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이들을 위한 팝 에포크를 현재와 미래에 있게 할 것이다. 굴하지 않는 이 앞에서는 무엇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 무엇도 음악을 굴복시킬 수 없다.
임희윤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