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과 한경닷컴은 매주 월요일 대치동 교육현실의 일단을 들여다보는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자녀들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치동 학부모들에게 자녀의 초등학교 시절은 그저 ‘어린 시절’이 아닌 미래를 위해 치밀하게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다. 매순간 주어지는 미션을 다 수행해야만 가까스로 ‘남들만큼 했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A군(11세)은 9살에 이곳에 이사 왔다. 맞벌이인 A군의 부모님은 자녀가 스스로 학원에 도보로 등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이사를 선택했다. A군의 어머니는 “아이 성적은 대치동에서 상위 50% 이내로 평범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평범한’ 대치동 초등학생 A군의 학원 일정은 매일 하교 후 시작된다. 매주 월·금에는 하교 후 집에 들러 잠시 휴식한 후 태권도 학원, 수학 학원에 간다. 4학년이 된 A군은 수학 진도를 5학년 2학기까지 마쳤다. A군의 어머니는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진도가 느린 편”이라며 “더 앞서 나가려고 해 봤는데, 수학에 흥미를 잃는 거 같아 속도를 늦췄다”고 설명했다.
수요일은 방과후 야구 수업이 있는 날이다. 이후에는 논술학원에 간다. 화·목은 수영 학원에 갔다가 영어 학원에 등원한다.
학원 수업 사이는 휴식 시간인 동시에 숙제 하는 시간이다. 학원에 가기 전 매일 40분 이상을 써야 한다. 저학년까지는 학부모가 도와줄 수 있지만, 특히 영어의 경우 고학년으로 넘어가면 수준이 급속도로 높아져 ‘학원숙제 도우미’를 찾는 부모가 많다. 숙제 도우미는 대학생 과외를 주로 이용한다. 시세는 1시간당 3만~4만원이다.
이렇게 지출되는 A군의 한 달 학원비는 약 155만원. A군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과목에 쉽게 접근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줘야 아이의 진로 선택지도 늘어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학년, 기초체력 기르는 시기대치동 초등학생 엄마들 머리에는 연단위 ‘대입 로드맵’이 정리돼 있다. 초등 1~3학년은 ‘기초 체력’을 기르는 시기다. 국어, 수학, 영어 모두 다양한 사고력을 키우기 위한 학원에 다닌다.
국어의 경우 어린 나이에 문해력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국어 영역을 공부하기 시작하면 1등급은 집을 팔아도 안 된다’는 말도 나온다. 국어 교육은 수학, 사회, 과학 지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배경 지식을 쌓기 위해서도 행해진다.
초등 1학년 사이에서는 ‘문예원’이 인기다. 문예원은 출산하면 곧바로 대기에 올려야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다.
이후 3학년까지는 ‘논술화랑’, ‘지혜의숲’, ‘페이지바이페이지’, ‘브레인컨설팅그룹 MSC’에 가는 학생이 많다. 이 중 논술화랑은 인기 강사의 주말반 수업의 경우 열리자마자 마감되기도 한다. 논술학원들은 대부분 매주 정해진 책을 읽고 학원이나 집에서 글짓기를 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수학도 이 시기 시동을 건다. 저학년 때는 문제 풀이를 반복하기보다는 한 문제를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수학 사고력과 서술식 사고력을 키우는 데 주력한다. 대표적인 학원이 ‘시매쓰’, ‘소마’, ‘CMS’, ‘필즈더클래식’ 등이다.
일부 아이들에게는 ‘생각하는 황소’ 입학을 준비하는 시기기도 하다. 초등 황소 과정은 초등학교 2~3학년부터 응시가 가능하다. 수능처럼 11월에 치러지는 황소 입학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보통 12개월에서 많게는 18개월까지 과외를 받기도 한다.
영어는 이 시기 가장 많은 양을 가르친다. 한 학부모는 “영어 유치원에서 모든 걸 쏟아부은 후 초등 저학년 때 그 절반으로, 고등학교 때 그 절반으로 줄여 중고등 때는 영어에 신경쓰지 않는 수준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90점만 넘기면 1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PEAI’, ‘렉스킴어학원’, ‘에디센어학원’, ‘띵킹어학원’이 대표적인 학원들이다. 초등 고학년 때부터 본격 대입 준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본격적인 ‘대입 레이스’가 시작된다. 이는 교육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사교육 참여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초등학교 4학년(49만6000원)에서 가장 많았다. 대입에 치중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입에서 변별력이 높은 수학의 비중이 높아지고, 국어와 영어의 비중은 낮아진다.
국어는 내신·수능 중심 수업으로 확 바뀐다. 특히 비(非)문학처럼 대입 문제에 쓰이는 난도 높은 글들을 읽어내는 훈련 위주로 진행된다. 1년 가까이 대기해야 하는 ‘천개의 고원’을 포함해 ‘기파랑’, ‘지니국어’가 인기다.
이제 ‘닥수’(닥치고 수학)라는 말이 통하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는 '생각하는 황소'가 있다. 초등 2~3학년부터 매년 11월 정규 시험을 통해 황소에 입학한다. 황소 학원 입학시험에는 작년 11월 전국에서 8000명의 초등 입시생들이 몰렸다.
이때 한 번에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은 이듬해 2~3월에 있는 ‘편입 시험’을 준비한다. 이에 붙기 위한 과외 시장도 활성화돼있다. 한 과외 교사는 “초등 저학년이 스스로 학교 과정만 좇아서는 붙기 어렵고, 올림피아드 교재, 최상위권 교재로 대비해야 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3월 치러진 황소 편입시험에는 5000명이 몰렸다. 황소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모든 초등 과정을 마친다. 이후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를 목표로 심화 학습에 치중한다. 한 학부모는 “교재를 한 권씩 더 사서 직접 아이와 함께 풀며 아이 학습에 동기부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영어의 비중은 확실히 줄어든다. 철저히 내신·수능 중심의 문법·독해 위주 수업을 듣는다. 오히려 교재의 난이도는 낮아진다. 이때는 ‘ILE’, ‘이맥스’, ‘KNS’, ‘해빛나인어학원’, ‘이안’을 가는 학생들이 많다. 예체능도 '최고 수준'으로여기까지는 국어·영어·수학이다. 여기에 틈틈이 예체능도 끼워 넣는다. 운동을 고를 때 가장 크게 고려되는 건 발육에 도움을 주는 운동이다. 요즘은 줄넘기 학원이 가장 인기다. 왕성한 성장을 위해 헬스장에서 트레이너에게 1대 1 PT를 받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골프 열풍이 불면서 일찍이 골프를 시작하는 아이들도 늘었다.
악기를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 한 학부모는 “피아노는 기본이고, 특히 영어권에서 유학을 하거나 국제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은 바이올린, 플룻 등을 추가해 레슨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