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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전기와 그리드(grid)의 세계-하에 앞선 '별첨'
대만 중앙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기습 인상한 것을 두고 "한국의 전기요금 정책을 따라 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누적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 국영 전력기업이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에 발맞추느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까지 동원됐다는 지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지난달 21일) 대만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125%포인트 인상해 16년 만에 최고치인 연 2%로 올린 것은 시장의 예상 밖 일이었다"고 전했다. 불과 몇 시간 전 지구 반대편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연 5.5%)를 5번째 동결하며 "긴축 사이클은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점에서다. 시장에선 앞서 4차례 연속 Fed를 따라 간 대만이 이번에도 역시 동결을 택할 것으로 점쳤다.
하지만 대만 통화당국은 Fed와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택했다. 배경은 하루 만에 밝혀졌다. 다음날 대만 경제부가 전기요금 인상안을 꺼내들면서다. 산업용은 25%, 가정용은 10%까지 올려야 한다는 발표였다. 전기료 인상으로 인한 추가적인 물가상승세를 우려해 긴축을 택해야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블룸버그는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수립에 있어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정부의 재정 및 산업정책의 여파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며 "대만 사례는 정부의 산업정책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괴리(단절)됐을 때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대만 정부는 2022년 신재생에너지 전환과 이를 위한 전력망(grid·전력계통) 개선 및 확충 계획을 공개했다. 그러나 대만 국영 전력기업 타이파워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 손실로 인해 이 투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는 타이파워가 전기 생산 원가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요금을 인상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부 정책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투자가 지연되고 있었고, 타이파워는 더 이상의 출혈을 막기 위해 전기요금을 급격히 올렸다.
시카고대학교 부스 경영대학원의 경제학 교수인 창 타이 시에는 최근 대만 커먼웰스 기고글에서 "대만이 저지른 실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의한 에너지 충격에 대응해 정부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격을 동결한 한국의 에너지 정책을 모방한 것"이라며 "(한국이 아닌) 전기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고 발전 원가에 따라 시장 가격을 책정하는 싱가포르가 모범 사례가 돼야 한다"고 했다.
소비자에게 전기소비량 감축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은 채 전기요금을 묶어두기만 하는 것은 오히려 불공정을 초래한다는 점에서다. 또한 한국도 대만처럼 조만간 전기요금 인상에 관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기료가 오를 경우 한국 통화당국 역시 추가 물가 상승을 피하기 위해 긴축을 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최근 발표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전기료가 물가 급등의 원인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유틸리티 기업들이 전기료를 비교적 자유롭게 책정한다. 전년 대비 기준으로 지난해 8월에 2.1% 올랐던 미국의 전기료는 11월 3.4%, 올해 1월 3.8%까지 뛴 데 이어 3월에는 전년 대비 5%나 치솟았다.
유틸리티 기업들이 발전 및 전력망 용량을 정비하고 늘리느라 대규모 지출을 하면서 소비자에 가격이 대폭 전가되고 있어서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미 주요 대도시 지역 4곳 중 3곳 이상의 유틸리티 기업들이 전기요금을 계속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