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고환율·고유가 암초를 만났다. 올 1분기 국내 증시 매수세를 주도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짐을 쌀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전날 유가증권시장에서 5거래일 만에 순매도 전환해 2381억원을 팔고 나갔다. 이달 들어 단 하루를 제외하고 '사자 행진'을 이어왔던 외국인은 전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팔자'로 변심했다.
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한 지난 9일부터 전날까지 외국인은 코스피200 선물도 2조2145억원 던졌다. 수급만 놓고 보면 외국인은 코스피 장·단기 '하락'에 베팅한 셈이다. 역대급 환율, 떠나는 외국인…코스피 '하락'에 베팅전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8.6원 오른 1384.0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달러당 1380원을 넘어선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7~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8~2009년, 레고랜드 사태가 빚어졌던 2022년 하반기 정도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이유는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견조함에 따라 미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당초 예상했던 6월에서 지연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란이 이스라엘에 보복 공격을 가하고 이스라엘이 다시 재공격을 예고하는 등 중동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극대화됐다.
원·달러 환율이 높아지면(원화 가치 하락) 외국인 투자자들의 환손실이 늘어나는 만큼 한국 주식(원화 자산)을 계속 보유할 이유가 사라진다.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매도 압력이 높아진다.
중동 리스크로 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것도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유가 급등으로 물가가 오르면 금리인상을 압박해 원화 대비 상대적 안전자산인 달러화 선호 현상이 커져서다. 한국과 같은 석유 수입국은 강달러와 에너지 가격 상승의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처지다.
이란의 보복 공격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 지난 12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장중 한때 배럴당 87.67달러까지 올랐다. 특히 이란과 이스라엘 충돌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까지 이어질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IMF는 지난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충돌 발발 직후 국제유가가 10% 상승하면 물가는 0.4%포인트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미 CNBC는 에너지 컨설팅회사 래피던 그룹의 밥 맥널리 대표를 인용해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배럴당 120~130달러대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유가 130달러까지 치솟을 수도"…중동불안에 '고유가' 전망 난무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공교롭게도 최근 국내 증시는 한국의 최대 불안 요소인 '고환율'과 '고유가'가 겹친 상황"이라며 "주식 투자자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환경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이달 들어 원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2% 하락했는데 주요 31개국 중 가장 폭이 크다"며 "이는 유가 불안 요인이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WTI 가격이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서면 환율 1400원 진입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오는 19일로 예정된 삼성전자의 배당금 지급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상황에서 외국인이 국내 주식에 재투자하지 않고, 원화 자산(국내 주식)을 달러화 자산(해외 송금)으로 바꿀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달러화 수요가 늘면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부채질하게 된다.
시장에서는 미국 고금리 장기화에 유가 충격이 겹치면서 환율 1400원대 돌파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외환 당국의 개입으로 1400원대까지 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전날 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외환·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우려가 있는 경우 시장 안정화 조치를 적기에 시행하겠다"며 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시장 불안 해소를 위해 이달 말 종료를 앞둔 유류세 인하 조치와 경유·압축천연가스(CNG) 유가연동보조금을 오는 6월 말까지 2개월 추가 연장하기로 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