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병원을 나간 지 두 달이 돼가지만, 그들은 병원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복귀 조건으로 의대 증원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데 그 또한 불가능해 보인다. 이대로 몇 년을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지난 두 달 동안 의료대란이라고 부를 법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교수들은 감당할 수 있을 수준으로 환자를 줄였다. 물론 아직도 자기 육체와 정신을 갈아 넣으며 버티고 있는 교수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정상이었는지 모른다.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서울의 대형병원으로의 ‘쏠림현상’이 약화됐다. 중형종합병원과 전문병원 이용은 조금 늘고 있다. 문제는 환자다. 갑작스럽게 수술이나 치료 일정이 연기되면서 불안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대형병원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몇몇 희귀·난치질환을 제외하고는 중형종합병원에서 진료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그것을 강제할 수는 없다. 당장은 전공의 사직으로 진료가 연기되는 환자들을 위한 상담 창구를 열고, 급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빠르게 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안내해 줄 필요가 있다. 결정은 환자들의 몫이지만 정보 제공은 정부의 몫이다.
환자와 교수들이 견딜 수만 있다면 지금의 현실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환자는 조금 더 기다리거나 지역의 강소병원을 이용해도 된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고, 교수들은 몇 개월마다 교대하는 전공의보다 정년까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훈련된 PA간호사가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는 중이다. 당장 문제는 수련병원의 도산이다. 재정투입이 절실하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병원들의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
그때는 전공의가 지금처럼 값싼 노동력이 아닐 테니 전공의와 분과전문의 수는 지금보다 줄여야 할 것이다. 오히려 1차의료의 수련 과정을 의무화하고 전공의 수련 과정은 보다 엄격하게 선발된 의사들에게만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병원은 국가로부터 수련비용을 받고 전공의를 양성해야 한다. 수련 과정 평가는 엄격해야 하고 능력과 윤리적 태도가 부족한 전공의는 수련을 중단시켜야 한다. 권리의식이 강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만, 참고 견디는 능력이 약하고 경청하는 태도가 부족한 의사를 억지로 교육할 필요는 없다. 교수들의 경험을 진지하게 배우고 환자들의 고통을 들을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광복 이후 지금까지 국내 병원 시스템은 젊은 의사들을 과도하게 부리며 유지됐다. 가난했던 시절이 남긴 악습이었다. 경제성장을 했음에도 전공의 수련을 인권과 교육의 관점에서 돌아보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Z세대 전공의들의 저항은 필연적인 결과다.
의대 정원 확대로 불거진 젊은 의사들과 정부의 마찰이 의료전달체계 정립과 대형병원 혁신이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어쩌면 이런 결과가 진정한 의료개혁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대형병원이 지금보다 환자를 더 줄여야 한다면 그렇게 하자. 대형병원 진료는 선착순이 아니라 중증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자. 미래를 위해 모든 국민이 이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면 큰 비용이 들더라도 그렇게 해보자. 그러나 무작정 과거로 돌아가진 말자. 전공의들이 쏘아 올린 ‘투쟁’ 움직임이 오히려 혁신의 기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