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풍력발전기 부품은 철강 부품 중에서도 고도의 내구성을 요구한다. 바닷물에 의한 부식에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육상 풍력발전기 부품보다 커 무게와 강한 진동도 견뎌야 한다. 까다로운 품질 수준을 맞추는 게 쉽지 않은 데다 설비 투자 비용도 많이 든다. 해상풍력 부품 시장에 후발주자가 진입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지속 투자로 최고 대장간 될 것”부산에 기반을 둔 자유형 단조회사 태웅은 글로벌 해상 풍력 플랜지(풍력발전기 몸통 이음쇠)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차지하며 선두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이 회사 플랜지는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정하는 세계 일류 상품으로 선정됐다. 산업부는 기술력이 뛰어나면서 세계 시장 점유율이 5% 이상, 수출 실적 순위가 5위 이내인 제품을 세계 일류 상품으로 엄선한다. 태웅은 이 부품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독일 지멘스, 덴마크 베스타스 등에 공급한다.
허용도 회장은 지난 1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회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유형 단조업체”라며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세계 최고 대장간이 되겠다”고 밝혔다. 자유형 단조 사업은 쇳덩이를 불에 달군 뒤 단조 설비를 이용해 모양을 만드는 것이다. 업계에선 ‘현대판 대장간’으로 부른다.
태웅이 풍력발전 시장에 일찍 진입할 수 있었던 건 설비 투자 덕분이다. 허 회장은 2000년대 중반 처음으로 풍력발전 단조를 공급한 때를 회상하며 “국내 기업 중 링 단조설비를 보유한 회사가 태웅뿐이었다”며 “설비 투자 덕에 우연히 시장에 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태웅은 꾸준히 설비 투자를 늘려 세계 최고 수준의 단조 생산능력을 갖췄다. 그는 “태웅의 단조 생산능력은 연간 19만t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강조했다. 조선업 활기도 ‘호재’해상 풍력발전 시장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글로벌 해상 풍력 용량은 2020년 34GW에서 2030년 228GW, 2050년 1000GW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상황에 발맞춰 태웅은 올해도 설비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2월엔 독일 글로벌 설비업체 SMS와 9500파이 링 단조설비를 1만1000파이로 업그레이드하는 계약을 맺었다. 터빈이 커지면서 관련 부품도 대형화하는 추세에 따른 조치다. 허 회장은 “내년 말이면 이 설비를 본격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설비 투자에 든 금액은 300억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만1000파이 링 단조를 생산하는 업체는 태웅 외에 없다”며 “해상 풍력 시장에서 입지를 공고히 다지겠다”고 했다.
최근 조선업이 활기를 띠는 것도 태웅에 호재다. 조선 분야 대형선미재(선미 부분 기둥)를 생산하는 국내 중견기업은 태웅이 유일하다. 지난해 8월 삼성중공업과 350억원 규모 단조품 공급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허 회장은 “조선산업은 20년 주기로 부침이 반복된다”며 “시장 상황이 바닥을 찍고 최근 회복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본 선박 부품사 일본주단강(JCFC)이 2022년부터 조업을 중단하면서 관련 물량이 우리 회사로 일부 들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