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랏빚(국가채무)이 1100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626조9000억원)과 비교하면 500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나랏빚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서면서 ‘나라 살림살이’에 비상등이 켜졌다. ○1인당 국가채무 2179만원
정부는 11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2023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를 심의·의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채무는 1126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로 집계됐다. 한 해 전 결산(1067조4000억원)보다 59조4000억원 증가한 수준이다.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진 빚 중에서 상환 시점과 금액이 확정된 부채를 의미한다.
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전년(49.4%)보다 1.0%포인트 증가한 50.4%로 나왔다. 결산 기준으로 이 비율이 50%를 넘어선 것은 1982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후 처음이다. GDP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국가채무가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갓난아이까지 포함해 전 국민이 1인당 떠안고 있는 국가채무는 2178만8000원으로 조사됐다. 전년보다 약 120만원 늘었다.
확정된 나랏빚인 국가채무에 공무원연금 등 아직 확정되지 않은 빚까지 합친 국가부채는 지난해 2439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2326조원)보다 113조3000억원 증가했다. 재정적자 보전을 위한 국채발행 잔액이 60조원 늘었고, 공무원·군인연금의 현재 가치액(연금충당부채)이 48조9000억원 증가했다. ○흔들리는 건전 재정국가 채무가 빠르게 증가하는 주요 원인은 문재인 정부의 ‘확장 재정’ 여파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 지원 소요가 커진 측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세금으로 성장과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국가 채무가 급격하게 불어났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적자 국채 발행액만 316조원에 달했다. 김명중 기획재정부 재정성과심의관은 “그간의 재정 적자가 누적되면서 국가채무가 증가하고 있다”며 “세입에 비해 지출 소요가 큰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나랏빚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건전재정’ 기조를 앞세운 윤석열 정부에서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당초 목표보다 악화하고 있어서다.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관리재정수지는 87조원 적자로 집계됐다. 전년 결산보다 30조원 줄었지만, 당초 예산안(58조2000억원)보다 약 29조원 늘었다. 관리재정수지는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 수지를 차감한 것으로 그해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로 조사됐다. 지난해 예산안(2.6%)보다 1.3%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자제하고, 올해 예산 지출 증가율(2.8%)을 사상 최저 수준으로 잡는 등 건전 재정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총지출(610조7000억원)은 전년보다 71조7000억원 줄었다. 지난해 본예산(638조7000억원)보다 약 28조원을 덜 지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관리재정수지가 나빠진 것은 사상 최대 ‘세수 펑크’ 때문이다. 앞으로 재정 건전성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총선 공약이 많기 때문이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재부는 앞으로 세수 추계를 고려해 감당할 수 있는 지출을 유지해야 한다”며 “재정 건전성을 해치는 공약은 국회를 설득해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상용/이광식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