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예상치를 웃돌면서 미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 국내에선 여당이 22대 총선에서 참패함에 따라 밸류업 프로그램 등 정부의 자본시장 관련 정책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시장 안팎의 변수가 커지고 시계(視界)가 불투명해지면서 시중 자금이 방향을 못 잡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금리형 상장지수펀드(ETF)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에 돈을 ‘파킹’해두면서 시장 흐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수출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국내 반도체주, 자동차주도 비교적 안전한 투자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달러 가치 상승에 베팅하는 상품, 유가 상승 혜택을 볼 수 있는 에너지 관련 상품을 주목해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기성 자금 급증…눈치 보는 투자자들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단기간 돈을 예치하는 데 주로 이용하는 CMA 잔액이 지난 8일 기준 81조610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초 78조8959억원에서 이달 초 80조5384억원으로 1조6425억원 늘었고, 최근 6거래일 만에 1조717억원 더 불어나는 등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CMA 예치금이 늘어나는 건 상황에 따라 자금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투자자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자본시장의 이런 관망 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증시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반도체 등 최근 실적이 잘 나오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2분기에 자산 가격이 다소 깊은 조정을 겪을 수 있다”며 “특정 자산에 대한 쏠림 현상도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국내 증시에서는 반도체주와 자동차주가 변동성의 피난처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반도체주는 최근 경기 개선세가 뚜렷해졌다. 이 영향으로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1개월 전 32조429억원에서 최근 37조576억원으로 증가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1분기 자동차 수출액은 175억달러(약 23조7800억원)로 1분기 기준 역대 최대였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 전망치 평균 역시 1개월 전 14조3257억원에서 최근 14조4846억원으로 늘었다. ○“반도체·달러·원자재 등 주목해야”달러 가치 상승에 투자하는 ETF도 유망 피난처로 꼽힌다. 달러선물지수 수익률을 두 배로 추종하는 ‘TIGER 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는 이날 1.46% 상승했다. 또 다른 달러 가치 연동 ETF로 꼽히는 ‘KOSEF 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 ‘KODEX 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 역시 각각 1.39%, 1.36% 올랐다.
글로벌 경기 회복을 고려하면 추세적 상승이 예상되는 원자재·에너지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경기 민감 원자재로 꼽히는 은, 구리, 니켈 등 금속 가격은 최근 빠르게 올랐다. 국제 은 선물 시장에서 은 5월물 가격은 지난 2월 1일 트로이온스당 23.23달러에서 이달 10일 28.05달러로 이 기간 20.75% 급등했다. 국제 구리 현물 가격은 같은 기간 t당 8437달러에서 전날 9365달러로 10.9% 올랐고 니켈 현물(16.2%), 알루미늄 현물(9.81%) 등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에너지 가격도 경기 회복세와 중동 정세 불안으로 급등세다. 서부텍사스원유(WTI)는 2월 초 배럴당 73.8달러에서 전날 86.2달러로 뛰었다.
이 영향으로 관련 ETF도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 ‘TIGER 구리실물’은 최근 한 달(3월 12일~4월 11일) 15.03% 상승했다. 주요 원유 관련주 역시 상승세다. 에쓰오일은 이달 들어서만 5.35% 올랐다. 셰브런(3.13%), 엑슨모빌(5.13%) 등 해외 정유주도 강세를 보인다. 알렉산드라 윌슨 엘리존도 골드만삭스자산운용 멀티에셋 최고투자책임자는 “에너지주 투자는 증시 변동성을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양병훈/이지효/배태웅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