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기점으로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제약·바이오기업이 무더기로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술특례 제도로 상장한 기업이 상장 유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관리종목 편입을 유예해주던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서다. 업계에서는 연구비가 많이 드는 바이오기업 특성을 고려해 상장 유지 조건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바이오社 80%, 법차손 요건 미충족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제약·바이오기업은 6곳이다. 올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44개 기업 중 14%가량이 제약·바이오 업종이다.
최근 3년간 관리종목에 지정된 제약·바이오기업은 급속도로 늘었지만 사실 ‘진짜’ 위기는 올해부터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기술특례 상장한 바이오기업의 40%가 2018~2020년에 상장했는데, 이들 기업의 상장 유지 조건 유예기간 만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는 자기자본의 50% 이상에 해당하는 법인세비용 차감 전 손실(법차손)이 3년간 2회 지속된 상장사는 관리종목으로 지정한다. 단 기술특례 상장기업은 이를 3년간 유예해준다. 기술특례 상장이 재무 성과보다는 기술력 위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제도라는 취지에서다. 2019년과 그 이전 상장한 기업은 2021년에 3년 유예가 종료돼 2021~2023년 법차손이 2회 이상 지속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올해 관리종목에 지정된 올리패스, 파멥신, 에스티큐브 등이 이 사례에 해당한다.
문제는 올해부터다. 2020~2021년 기술특례 상장한 제약·바이오기업은 25곳이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에 3년 허니문 기간이 끝났다. 올해부터 법차손이 지속되면 관리종목 편입 대상이 된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2022년과 지난해 법차손을 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기술특례 상장 바이오기업의 80%가량이 법차손 규정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단순 계산하면 25개의 80%인 20개 기업이 관리종목 지정 위기에 놓인 셈이다. ○상장유지 조건 재검토 필요‘매출 30억원’ 요건 때문에 관리종목 딱지를 달게 될 기업도 적지 않다. 기술특례 제도로 상장한 기업은 5년의 유예기간 이후에도 연간 매출 30억원을 올리지 못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이 요건에 따르면 2019년 기술특례 상장한 13개 바이오기업은 올해부터 매출을 30억원 이상 내야 한다. 신약 개발에 10년 이상이 걸리는 만큼 바이오기업들은 제대로 된 매출을 내기 힘든 상황이다. 2019년 6월 상장한 항암제 개발업체 A사의 연간 매출은 2021년 2억원, 2022년 4800만원, 2023년 3억원에 그쳤다. 같은 해 12월 상장한 인공지능(AI) 신약개발기업 S사는 지난해 처음 매출 1억원을 넘겼다.
업계에서는 2년여 전부터 얼어붙은 투자심리가 회복되거나, 극적인 기술수출(LO) 계약이 체결되지 않는 한 관리종목 지정 기업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현재 제약·바이오의 주가 흐름이 좋지 않은 데다 고금리 추세가 장기화하면서 수익성 개선 방안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업종 특성을 고려해 상장 유지 조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경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법차손 요건은 유예기간을 3년에서 7년으로 늘려도 70%에 달하는 기업이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유예 실효성이 떨어지고, 기업들이 R&D 투자를 줄이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어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