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 표가 5900만원?"…'돈'으로 보는 22대 총선 [이슈+]

입력 2024-04-12 08:06
수정 2024-04-12 08:19

5900만원. 제22대 총선에서 유권자가 행사하는 1표의 가치를 산출한 액수다. 여느 고급 수입 세단 한 대의 가격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해당 액수는 4년간 다루게 될 정부 예산의 총액을 전체 유권자의 수인 4428만11명으로 나눠 계산한 값이다. 올해 정부 예산인 656조6000억원을 기준으로 산출했다.

이번 총선에선 2965만4450명이 투표에 참여해 67.0%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32년 만에 역대 최고 수치의 투표율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계산식을 감안하면, 5900만원짜리 투표권 1462만5561개가 제대로 행사되지 않은 채 선거가 마무리된 셈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약 4390억원이 선거 비용으로 투입됐다. 투·개표 인건비와 선거 운동, 시설 비용 등 실시 경비가 2810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외에는 정당이 인건비·정책개발비 등으로 사용하는 선거보조금 502억원, 여성·장애인 후보를 추천한 정당에 주는 보조금 6억원 등이 있다.

선거 비용 중 후보자 개인의 선거 비용 보전·부담액은 1072억원이다. 개인 선거 비용이 1000억원 넘게 드는 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먼저 선거 후보자가 되기 전, 각 정당에서 치루는 경선 참가비가 필요하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1500~2000만원 선이다.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선거기탁금도 낸다. 일종의 보증금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는 1500만원,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는 후보자당 500만원의 기탁금을 납부해야 한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인 또는 선거일 현재 29세 이하인 경우에는 기탁금의 50%, 선거일 현재 30세 이상 39세 이하인 경우에는 기탁금의 30%를 깎아준다.

후보자가 되면 본격적으로 '억 소리'나는 선거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선거 사무실 임대료, 사무원 인건비, 유세차 렌트비, 공보물 인쇄비, 현수막 설치비, 언론 광고비 등이다. 현수막 제작에만 수백만원이 들고, 선거 유세 기간에는 유세 차량 1대당 최소 1000만원의 대여료를 지불해야 한다.

단적인 예시로 선거 기간 받아보는 수십통의 문자도 후보자 입장에서는 큰 비용을 들인 유세 활동이다. 문자 1건당 10원씩 드는데, 한 번에 10만명에게 보낸다고 가정할 경우 발송 버튼을 한 번 누르면 순식간에 100만원이 쓰인다. 관계자들 사이에선 후보자 1인당 3억원까지도 든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올해 선관위는 지역구별 선거 비용 제한액으로 평균 2억1800만원을 제시했다. 지역구별로 상이하며 제21대 총선보다 평균 20%가량 높인 액수다. 선거 비용에 상한을 두는 건 금권 선거를 막고, 선거운동 기회의 불균등 완화, 과열 혼탁 선거 방지 등을 위해서다.


아울러 국가는 선거공영제에 따라 선거에 출마해 득표율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정당이나 후보자의 선거운동 비용을 부담한다. 선거공영제란 재력과 무관하게 국민 누구에게나 입후보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제도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지역구 후보자가 유효 투표수의 15% 이상을 득표하면 선거 비용 제한액 범위 안에서 선거에 쓰인 비용 전액을 돌려준다. 10% 이상 15% 미만 득표하면 절반을 돌려받는다. 10% 미만은 돌려받지 못한다.

당선 여부와 무관하게 선거 비용 보전에서 희비가 갈린 제22대 총선 후보들에게도 눈길이 쏠렸다. 옥중에서 4·10 총선을 치른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는 광주서구갑에서 17.3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거 비용 전액을 보전받게 됐다. 순천광양구례을 선거구에서 득표율 23.66%를 기록한 국민의힘 이정현 후보도 선거 비용을 전부 보전받는다. 광주서구을에 출사표를 던진 이낙연 새로운미래 후보는 13.84%를 기록해 1.16%포인트(p) 차이로 선거 비용을 절반만 보전받게 됐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선거공영제와 관련, "과거에는 '30억 쓰면 당선, 20억 쓰면 낙선'이라는 속설이 돌 정도로 금권 선거 양상이 뚜렷했다"며 "선거공영제로 인해 선거에 출마하는 문턱이 많이 낮아진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여전히 보전 제한액이 실제로 선거에서 쓰이는 비용보다 적다"며 "정치 문화적인 차원에서 선거 비용을 완전히 보전할 수 있는 완전 공영제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향후 국회의원 300명에게 지급될 4년간의 세비는 9795억원으로 추산된다. 의원 1인에게 지급되는 연봉인 1억5690만원과 보좌진 9명의 급여, 상여금, 사무실 운용비용 등을 계산한 값이다. 제22대 국회는 앞으로 4년간 2600조원이 넘는 정부 예산을 다룬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